국내 은행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정부의 금융 산업에 대한 몰이해와 규제 산업으로만 접근하려는 시각이 팽배해서라는 지적이다. 특히 은행도 임기제 회장 등 취약한 지배구조 탓에 장기 플랜은커녕 단기 성과에만 취중하는 경영행태 또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한국기업평가가 국제금융전문지 ‘더 뱅커’의 지난 2016년 기준 세계 100대 은행그룹의 재무현황을 분석한 결과 KB금융이 60위를 기록했다. KB금융은 1년 전 64위에서 4계단 뛰어올랐지만 전체 60위라는 순위는 초라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부동의 1위를 유지해온 신한금융은 68위, 하나금융은 80위, 우리은행은 88위를 기록했다. NH농협금융은 지난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올해도 100위권 내로 진입하지 못했다. 더구나 100위권에 들기는 했지만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처리 등으로 지난해 58위에서 64위로 급락했다.
자기자본이 아닌 수익성을 기준으로 놓고 봐도 글로벌 은행과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100위권 내 국내 5개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은 평균 0.4%, 기본자본이익률(ROC)은 7.1%를 기록했다. 이는 100대 은행그룹 평균인 0.9%와 13.5%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ROA의 경우 세계 100대 은행그룹 평균은 지난해와 비슷했지만 한국 은행그룹은 평균 0.2%포인트 하락했다. 국내 5대 은행의 수익성 하락은 조선·해양 부문 구조조정의 영향이 컸다고 하지만 김정현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기업 구조조정에 의한) 실적 악화를 빼고도 ROA는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국내 은행이 탐욕 금리로 이익을 과다하게 챙기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냐”며 해명하고 있지만 은행 수익의 80%가량을 예대마진이 차지하다 대출 증가 추이에 따라 수익이 급등락하는 천수답 경영에 머물고 있어 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역대 정부에서는 금융 산업을 산업 측면에서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현 정부에서는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빚 탕감 등 서민금융 지원에 집중하느라 금융 산업을 산업답게 육성하겠다는 복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금융 산업을 실물 지원이나 서민이나 약자를 보호하는 도구로만 보고 있다는 의심을 씻어내기 어렵다”며 “금융 산업의 발전 청사진을 그리고 경쟁력과 건전성 강화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금융 산업을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서민 지원을 강화하는 일종의 ‘구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의 금융권 인사 지연 등으로 금융홀대론이 확산됐고 급기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홀대가 아니다”라고 공개 반박하는 일도 있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도 똑 부러지게 금융 산업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이 없어 정부의 금융 산업에 대한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금융개혁을 이어받는 식으로라도 정부의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금융권 내부의 취약한 지배구조도 은행의 장기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회장 임기가 끝날 때만 기다리며 권력다툼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경영진 자체가 단기 성과에만 치중할 뿐 연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은 장기 비전을 마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는 회장 연임을 위해 노조의 과도한 복지 요구를 수용해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평균 3년 단위로 돌아가는 최고경영자(CEO) 임기를 늘려 장기 전략과 일관된 방향으로 경영할 환경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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