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거센 반발 속에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국이 얼어붙고 있다. 당장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공조 속에 이뤄진 예산안 통과를 ‘밀실 야합’으로 규정하며 대여 투쟁 강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은 ‘무책임한 선동질’이라고 맞서며 남은 기간 민생·개혁입법 과제 추진에 나설 계획이지만 한국당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주요 입법과제 처리도 난항이 예상된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6일 새벽 통과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대한민국 경제에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긴 사회주의식 예산”이라며 예산안 표결에 찬성했던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특히 국민의당을 향해서는 “사실상 여당에 협력하는 위장 야당”이라며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민주당과의 뒷거래 의혹 논란을 강하게 성토했다. 예산안 협상에 직접 참여했던 정우택 원내대표도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두 당이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 이면 거래를 한 것”이라며 뒷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예산안 강행 처리에 반발한 한국당 의원들이 일부 상임위의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파행을 겪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예정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면서 관련 법안 처리 불발은 물론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인사말도 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민주당은 원내지도부가 합의문에 서명해놓고서는 반대 당론을 정하고 본회의장에서 고성 시위를 벌인 한국당에 화살을 돌렸다. 추미애 대표는 “합의 정신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어깃장을 놓는 게 협치를 요구하는 한국당의 참 모습이냐”며 “좌파예산을 운운하며 무책임한 선동질에 주력한 한국당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다만 민주당은 예산 정국의 큰 고비를 넘긴 만큼 남은 기간 임시국회를 소집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를 뒷받침할 민생·개혁입법에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예산국회가 일단락된 만큼 다음은 민생입법 국회”라며 입법 추진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안과 국정원 개혁법,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을 중점 입법과제로 꼽고 있다.
하지만 예산안 처리에 강하게 반발한 한국당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할 경우 주요 입법과제의 국회 통과는 낙관하기 어렵다. 더욱이 오는 12일 선출될 예정인 한국당의 새 원내대표가 대여 투쟁 강도를 높여가면 정국은 급격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원내대표 후보로 나선 김성태·이주영 의원 모두 강력한 대여투쟁을 천명하고 있어 여당 원내지도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한 배를 탔던 국민의당과의 공조를 다시 이끌어내는 일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예산안을 통과시켜줬다고 해서 정부 여당의 잘못된 정책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라며 여당을 향한 견제구를 날렸다.
/김현상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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