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최희서가 갑자기, 운이 좋게 성공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2017년을 빛낸 영화배우에 꼭 들어가는 이름이 있다. 8년간의 무명 설움을 단번에 떨쳐낸 최희서다.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에서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은 그는 수준급의 일본어 실력과 섬세한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올 한해에만 6개의 신인여우상을 차지하고,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 최희서는 준비된 배우였다. 지난 21일 방송된 tvN ‘인생술집’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까지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지난날을 돌아봤다.
이날 최희서는 먼저 상을 받던 순간을 떠올렸다. “신인여우상은 혹시나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수상소감을 준비해갔다. 여우주연상에 후보로 올랐지만 아예 잊고 있었다. 8년 동안 무명 단역으로 있던 배우가 무대에 섰다”며 아직도 울컥하는 감정을 내비쳤다.
이어 “사실 저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무대에 다시는 못 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저란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수상소감을 종이에 적어 준비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너무 길었다”며 다소 길었던 수상 소감의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한 그는 ‘마크의 페스티벌’ ‘완전 소중한 사랑’ ‘야누스’ ‘동주’ ‘시선 사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또한 연극 ‘데스데모나는 오지 않아’ ‘의자는 잘못없다’, 드라마 ‘레인보우 로망스’ ‘오늘만 같아라’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그런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작품은 단연 ‘박열’이다. 그러나 ‘박열’의 출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동안 매 작품에 최선을 다하던 순간순간의 노력이 최희서를 그 자리까지 오게 만든 것이었다.
최희서는 너무나도 운명 같았던 이준익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연극을 하면서 힘들었던 시기, 보여줄 건 연기라는 생각에 지하철에서도 열심히 대본 연습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동주’ 각본, 제작을 맡은 신연식 감독님이 저를 보시곤 같은 역에서 내리면 명함을 줘야겠다고 생각하셨는데, 마침 같이 경복궁역에서 내리게 됐다. 명함을 받고 이준익 감독님과 미팅하게됐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은 ‘동주’를 넘어 ‘박열’까지 이어졌다. 사실 최희서가 ‘박열’에 캐스팅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인지도라고 할 게 거의 없는 배우였다.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 민진웅은 “‘박열’에 희서가 거론이 됐을 때 많이 봐왔던 얼굴이 아니고 인지도도 높지 않아서 과연 그 친구로 가도 되겠냐는 의견들이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때 이준익 감독님께서 2가지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이렇게 일본어를 완벽하게 하고 이렇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오면 그 사람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의 최희서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준익 감독마저 반하게 만든 최희서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마치 수능 공부를 하듯 대본에 파고든 열정과 노력이었다. 즉석에서 공개된 최희서의 대본 노트에는 ‘박열’ 마지막 상영 영화표부터 인물 관계도, 어마어마한 양의 대사들이 들어있었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사람 자체가 실존 인물이고 그녀에 관한 기록도 많이 남아 있고 자서전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 연구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한 최희서는 대사를 틀리지 않고,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낄 때마다 해당 대사 옆에 바를 정자를 써넣으면서 연습을 이어나갔다. 대종상 최초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쥔 배우의 내공은 이렇게 차곡차곡 쌓였던 것이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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