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16.4% 인상한 뒤 정부는 혈세로 임금인상분을 지원한다는 고육책을 꺼냈다. 올해만 3조원의 예산도 책정했다.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했지만 정부 내에서도 반대는 많았다. 민간의 월급까지 나랏돈으로 지원하면 ‘정책 마지노선’이 무너진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기자와 만나 “솔직히 정책의 묘수가 없을 때는 수시로 재정카드를 꺼낼 테고 급기야 나랏빚은 관리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실패할 수 있는 정책에 막대한 혈세를 투입한 뒤 정권이 바뀌면 ‘나는 모른다’고 할 테고 책임도 사과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불길한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예산사용의 불문율이 무너진 뒤 문재인 정부는 재정카드를 남발하고 있다. 세수가 잘 걷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급기야 15일 발표한 청년고용대책에는 ‘파격을 넘어 충격’적인 방안까지 포함됐다. 정부는 중소기업 취업자에게 나랏돈을 지원해 대기업 수준까지 연봉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산업단지에 위치한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취업자에게는 1,035만원의 실질지원을, 해당 기업에는 900만원의 고용지원금을 주는 것이 골자다. 20만명가량이 혜택을 본다고 가정하면 4조원 안팎의 혈세가 또 민간임금으로 흘러들어가는 셈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재정으로 대신하려는 것은 문제”라며 “청년들이 3∼4년 뒤 일을 그만두는 것도 아닌데 대책이 지속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일자리는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이 만든다는 진리를 외면한 채 재정으로 풀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정부의 재정만능주의가 도를 넘어섰다. “위기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면서 모든 문제를 나랏돈으로 해결하려는 행태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11조원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이어 정부는 또 4조원 규모의 추경을 공식화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재난 수준인 청년 고용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재원대책이 필요하다”며 “청년일자리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혈세에서 재원을 마련해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얘기다. 화답이라도 하듯 정부는 최근 5년간 10조원 넘는 돈을 청년일자리에 쏟아부은 것도 모자라 중기 취직자에게 직접 돈을 지급하는 방안까지 냈다.
문재인 정부가 혈세를 물쓰듯 하면서 위기 때 마지막 보루인 재정은 위태롭다. 문재인 정부는 적자재정을 공식화했다. 올해 28조원을 시작으로 해 5년간 172조6,000억원의 적자재정을 편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기 재정계획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편성한 역대 정부와 달랐다.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 기조대로 쓸 돈은 쓰겠다는 얘기다. 여기에 맞춰 발표한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17만명 증원 등에도 천문학적인 재정이 들어간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들 4대 재정사업에 대한 중장기 국가재정을 산출해보니 오는 2060년에 늘어난 나랏빚은 3,400조원에 달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 11년간 126조원이 들어간 저출산 부문에도 막대한 재정을 또 쏟아부을 기세다. 정부는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근로자가 하루 1시간 단축근무를 하면 사업주에게 최장 1년간 월 최대 44만원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재정은 감당할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문제는 복지는 물론 구조조정에도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뒤따르는 정책 실패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 있는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8년간 4조원의 혈세를 투입하면서도 성동조선은 결국 법정관리로 갔다.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다. 한 정책연구기관 고위관계자는 “정책 실패를 하나하나 지적하면 복지부동 현상만 나타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미래 세대에게 무거운 빚을 넘기는 막대한 재정투입에 대해서는 꼼꼼히 따지고 책임을 묻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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