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성장 첫 번째 현장방문으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 혁신파크를 찾아 의료기기 산업에서 규제혁신을 이뤄내면 다른 분야의 규제혁신도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8월31일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성장 세 번째 현장방문으로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를 찾아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신을 강조했다.”
미디어에 나오는 최근 대통령의 현장 행보를 보면 경제성장에 기술혁신이 필요하고 기술혁신이 일어나려면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을 현 정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우선순위에 놓고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비친다. 이는 박수 치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필자는 왠지 팔짱 끼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정말 문제를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정말 혁신을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을 거라고 믿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의료기기 산업이든 의료데이터 산업이든 현 정부와 그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은 보건의료 산업 얘기만 나오면 ‘의료 민영화!’라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의료 민영화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은데 자신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의료 민영화의 틀에 집어넣는다. 원격진료도 의료 민영화, 디지털헬스도 의료 민영화, 신약의 약가 인센티브도 의료 민영화 등등이다. 일단 이들에게 의료 민영화 낙인이 찍하면 더 이상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보건의료 산업은 특성상 인허가에서 건강보험 등재, 가격 결정 등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 정책과 규제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혁신에는 제도개혁이 필요하고 모든 개혁 이슈에는 이해 당사자들이 있게 마련인데 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그룹들이 의료 민영화 알레르기 그룹과 연합해 이를 가로막으면 아무리 다수의 국민에게 이익이 가는 혁신이라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이를 추진할 수가 없다.
의료 민영화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보건의료 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민영화로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윤과 혁신은 동전의 양면이다. 혁신을 이룬 대가가 이윤이며 이윤은 혁신의 동인(動因)이다. ‘혁신하라, 그러나 이윤은 창출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된 말(oxymoron)이다.
물론 보건의료에 공공 부문의 역할이 있다. 교육에도 금융에도 공공 부문의 역할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공공 부문만 가지고는 안 된다. 교육 산업도 금융 산업도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보건의료 산업도 중요하다. 체신부 공무원들이 통신의 공공성을 내세워 민간 통신사업자의 시장 진입에 반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대 변천에 따라 이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우리나라 정보통신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대통령의 혁신성장 현장 행보에 선뜻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의료데이터 산업이 일어나려면 의료데이터의 특성에 맞게 규제하는 법이 필요하다. 금융데이터·소비자데이터·교육데이터·사법데이터는 모두 다른 특성을 갖고 하나의 법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 각 소관 부서들이 장기적 안목에서 제도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법무부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국회는 이를 받아서 단계적으로 입법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말 문제를 이해하고 혁신을 추진할 의지가 있다면 이런 작업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현장 행보는 지난 정권에서도 많이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현장 행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현장 행보는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을 때 ‘하는 척’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현장에 있는 대통령은 보기 좋다. 그러나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대통령은 보기 좋은 대통령이 아니고 일의 맥락을 알고 챙기는 대통령이다.
성장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노동과 자본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을 증가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혁신을 통해 같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로 노동 투입의 한계를 느끼고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혁신은 이제 선택이 아니다. 목표와 전략이 제대로 돼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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