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기금운용체계 재편안(案)에 이어 정부의 국민연금 개편 복수안이 이달 중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 8월 재정계산위원회가 내놓은 보험료 인상과 의무가입 연장으로 빚어진 논란이 다시 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금재정 안정으로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일 제도개혁은 기성세대의 책임이자 시대적 과제다. 나아가 국민연금의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과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궁극적으로 경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제4차 장기재정추계는 5년 전 추정치 대비 기금 고갈 시기를 앞당긴 원인으로 경제와 직결된 세 가지 핵심요인을 꼽았다.
첫째, 경제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이다. 기금 소진 시기가 3년 당겨진 가장 큰 이유는 낮아진 경제성장률이다. 현재 2%대로 떨어진 잠재성장률은 결정적 반전이 없으면 더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성장 둔화 추세를 바꾸지 못하면 다음번 재정추계에서는 추가적 개선 조치가 불가피할지 모른다. 4차 재정추계는 오는 2020년까지 3%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가정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 너무 낙관적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성장 전망치를 3.0%에서 2.7%로 내렸고 내년에는 더 악화하리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초호황을 맞고 있는 미국은 지난달 실업률이 3.7%로 50년래 최저 수준을 기록한 반면 국내 경제는 성장률과 실업률 등 핵심 경기지표에서 오히려 미국에 역전되고 있다. 올해 1~8월 중 국내 산업현장의 버팀목이자 국민연금의 미래를 감당해야 할 다음 세대(청년·30·40대)의 취업자가 15만명 줄어들어 금융위기 이후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둘째로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다. 글로벌 추세인 고령화는 차치하고 한국 인구구조 악화의 주원인은 초저출산이다. 저출산은 생산가능인구를 줄이고 미래 연금가입자를 줄여 재정을 악화시킨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05명으로 급락했고 올해는 처음으로 1.0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난 2·4분기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인 0.97명을 기록하면서 최근 재정추계에서 예상한 합계출산율 예상치 1.24명보다 낮아졌다.
저출산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에서 비롯되지만 그중에서도 높은 양육비, 비싼 집값, 낮은 취업률 등 경제 문제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 비전이 없으면 출산율 제고를 위한 어떤 노력도 결실을 보기 어렵다. 최악의 청년 실업률이 보여주는 고용 악화는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구조적 문제다. 저출산 문제의 근본 해결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부터다.
셋째 요인은 부진한 기금수익률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올 7월 말 현재 연간 수익률은 1%대로 떨어졌는데 자산 640조원의 20%를 투자한 국내 주식시장에서 6%대의 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해외투자와 대체투자의 선방으로 마이너스 수익을 막은 결과다. 주가는 경기 선행지표이자 기업가치 전망을 반영하는 만큼 거시경제와 기업 경영환경이 나빠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국내 주가 하락에 따른 평가손은 기금운용 부실의 측면보다 반시장적 경제정책에 기인한다. 4차 재정추계 전망치인 연평균 4.9%의 수익률 달성은 만만치 않다.
세계 최대인 1,600조원 규모의 일본공적연금펀드(GPIF)는 오랫동안 운용수익 경쟁력에서 바닥을 헤맸다. ‘덩칫값 못한다’는 혹평에서 벗어난 것은 경제가 살아난 덕분이다. ‘잃어버린 20년’의 극복을 위해 2012년 도입된 아베노믹스 정책기조로 경제 회복이 본격화하면서 기업 실적과 주식시장이 살아났고 수익률은 대폭 개선됐다. 지난주 닛케이지수는 27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주식시장 활황의 최대 수혜자는 시총의 5%를 점한 GPIF(즉 일본 국민)가 된 셈이다.
신(新)경제냉전 시대로 치닫는 미중 무역전쟁, 채권금리 급등으로 출렁이는 국제 금융시장, 커져가는 신흥국 위기 조짐 등 악화일로의 대내외 경제 환경에서 한국경제호(號)의 좌초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 평균수명 100세 이상 살아야 할 후손들에게 부담 떠넘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연금제도 개혁과 기금운용 개선은 ‘역동적 경제’라는 동력이 뒷받침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반복적 연금개혁은 피할 길이 없고 국민의 노후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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