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중심의 금융안정 모니터링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집값 상승기에 가계대출도 함께 증가하는 게 금융시장의 상식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현금 부자 및 주식·가상화폐(코인) 차익 실현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대출 증가와 무관하게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는 이 같은 자금 흐름을 추적할 권한이 없어 시장 변화에 ‘깜깜이’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은 “가계대출이 줄어드는데도 집값이 오르는 현상”을 공통적으로 지목하며 기존 모니터링 체계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A 금통위원은 “앞으로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더라도 주택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일부 지역에서 상승세가 확대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가계대출 흐름과 주택 가격 사이의 괴리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10월 전체 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3조 2000억 원으로 전월(3조 5000억 원) 대비 3000억 원 감소했다. 실수요 지표로 통하는 은행권 주담대 증가액 역시 2조 5000억 원에서 2조 1000억 원으로 축소됐다. 6월에는 은행권 주담대 증가액이 5조 1000억 원에 달했으나 7~8월에는 3조 원대로 감소했고 9월부터는 두 달 연속 2조 원대 수준으로 유지됐다.
대출과 무관하게 서울 아파트값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17% 올라 서초·송파·용산·성동구 등 한강변 고가 지역을 중심으로 상승 폭이 확대됐다. 성동구는 0.29%에서 0.37%, 용산구는 0.23%에서 0.31%로 상승 폭이 커졌고 송파·서초 역시 강세를 보였다. 6월 이후 갭투자를 사실상 차단하고 주담대 문턱을 높였음에도 한강벨트권의 현금 부자는 규제 영향을 피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정부는 6월 27일 수도권 주담대 한도를 일괄 6억 원으로 제한하고 1주택자의 전세대출도 2억 원으로 묶는 초강력 대출 규제를 발표했다. 이어 두 차례 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이 토지거래허가구역·투기과열지구로 묶였다.
그동안 한은이 가계대출을 집중 모니터링한 배경에는 대출과 집값의 상관계수가 유독 높은 한국적 특성이 있었다. 실제 2000년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와 주택 가격 간 상관계수는 0.76으로 미국(0.37)·일본(0.20)보다 크게 높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가계대출을 묶으면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최근에는 과거보다 상관계수가 낮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뒤집어 말하면 가계대출 추이를 분석하는 것만으로 집값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한은은 금융 모니터링 체계 밖에서 움직이는 자금에 주목하고 있다. 주식·가상화폐 차익 실현 자금 가족 및 지인 간 금전 거래 등이 이런 사례다. 현행 세법상 가족 간 금전 대차는 연 4.6% 이자를 적용하며 실제 이자와의 차이가 연 1000만 원 이하면 증여로 보지 않기 때문에 고가 주택 시장에서는 이러한 ‘현금 매수층’이 강한 수요 탄력성을 보인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한은이 이러한 비제도권 자금 흐름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국세청·국토교통부·경찰 등 관계 기관 데이터는 상당 부분 기관 내부에서만 열람·가공이 가능해 통화정책 판단에 필요한 정보 연계가 구조적으로 막혀 있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한은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일부 정부 데이터는 폐쇄적 구조로 관리되고 있어 접근이 제한된다”며 “통화정책에 필요한 지표를 확보하려면 부처 간 칸막이를 해소하는 제도적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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