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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레제가 꿈꿨던 유토피아, 100년후 폐허 속에서 다시 찾다

■ 문경원·전준호, 韓 생존작가 첫 英 테이트리버풀 개인전

23일 신작 '이례적 산책' 첫 공개

산업화 시대 예술의 의미 되짚어

오는 23일 개막하는 테이트 리버풀 개인전에서 처음 공개될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신작 영상 ‘이례적 산책(Anomaly Strolls)’은 쓰임을 다한 고철더미 속에 놓인 스크린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피카소, 브라크와 더불어 큐비즘(Cubism·입체파)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프랑스 출신 페르낭 레제(1881~1955)는 원통형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 세상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잠시 건축도 공부했던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당한 것을 계기로 기계에 관심을 가졌고 이내 산업화 시대 기계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기계적 요소가 만드는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에 심취했다. 영화와 연극 등 다재다능했던 레제는 1919년 10명의 작가와 협업해 산업화 시대의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엮어 일러스트 책 ‘세상의 저편(La Fin du Monde·세상의 끝)’을 출간했다.

이 ‘세상의 저편’이 100년의 시간을 넘어 한국의 현대미술가와 만났다. 작가 듀오 문경원·전준호가 지난 2012년 독일 카셀도큐멘타에서 첫선을 보인 영상작품이 바로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 배우 이정재와 임수정이 주연한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를, 먼 미래의 사람인 여자 주인공은 종말 이후의 삶과 일상을 보여줬다.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영상 ‘세상의 저편’ 중 한 장면.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오는 23일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관 테이트 리버풀에서 문경원·전준호의 개인전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가 개막한다. 연 평균 54만 명이 방문하는 이 미술관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국인 생존작가의 개인전을 열기는 처음이다. 한국작가 전시는 지난 1992년 정창섭·윤형근·김창열·박서보·이우환·이강소의 원로 그룹전, 2010년 백남준 회고전이 전부였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개관 30주년과 리버풀의 유럽 문화수도 선정 10주년을 맞은 미술관이 모더니즘과 현대 작가의 연관성을 모색하며 기획했다. 레제는 산업화 시대의 예술을 상상했고, 오늘날의 문경원·전준호는 ‘오늘날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고민한 결과 ‘세상의 저편’이라는 접점에 닿은 것에 대해 미술관 큐레이터도 놀랐다고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될 문경원·전준호의 신작은 ‘이례적 산책’. 전작에 이어 또 등장한 남자 주인공 예술가는 리버풀에서 폐허가 된 건물과 텅 빈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물건들을 쇼핑 카트에 주워담는다. 하지만 시공간을 넘어온 그는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기에, 마치 쇼핑카트가 돌아다니며 관찰자 시점으로 보는 듯한 점이 독특하다. 18세기 중엽 이후 영국 산업혁명을 이끌었으나 지금은 쇠락한 리버풀의 산업단지 흔적들과 미래 첨단기술이 공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겹쳐 보여줌으로써 암울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를 동시에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신작 ‘이례적 산책’을 준비 중인 작가 전준호(왼쪽)와 문경원.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문경원 작가는 “시대는 다르지만 레제가 꿈꿨던 유토피아의 시점에 살고 있는 현대작가들이 같은 생각으로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은 제목으로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하고 있는 작업이 흥미롭다. 미술관이 이메일을 보내와 전시가 이뤄졌다”면서 “100년 전 페르낭 레제가 꿈꿨던 유토피아에서, 100년 후 현대작가인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적인 관점으로 리버풀 도시 곳곳의 흔적들을 영상에 담았다”고 밝혔다. 전준호 작가는 “인류 종말에서 살아남은 작가와 새 인류로 재탄생한 작가의 극적 대비를 통해 예술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면서 “(문 작가와) 10년 가까이 협업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경계 무너뜨리기’와 ‘경계 지우기’의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질문이 수백 년에 걸쳐 지속된다는 그 자체에 예술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10년 간 협업자가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가 문경원(왼쪽)과 전준호.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이들이 수년간 지속해 온 ‘뉴스 프롬 노웨어’ 프로젝트는 영국 작가 윌리엄 모리스(1834∼1896) 소설에서 제목을 빌려 왔다. 21세기 런던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당대 계급문화와 기계문명을 비판한 소설처럼, 100년 이후 사회를 그려보며 여러 물음을 던지는 중이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비롯해 같은 해 시카고 예술대학 설리번갤러리, 2015년 스위스 취리히의 미그로스 현대 미술관 등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지난해에는 한국전쟁 직후 냉전 시대의 정치적 쟁점과 부조리로 빚어진 대성동 자유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자유의 마을’을 선보였으며 지난 9월부터 11월 4일까지는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가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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