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서경캠페인-아픈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치매국가책임' 선언했지만..재정 48조 눈덩이·보험 혜택

④ 치매-선심성 우려 커지는 정부 정책

시설·인력 등 인프라 구축 재원 조달 방안 불확실

노환·정신질환까지 치매 진단에 건보 부담 더 커져

대규모 시설 위주 투자보다 지역밀착형 센터 늘리고

'치매' 용어 '인지장애'로 순화...사회적 관심 높여야

지난 6월 서울시 강남구 서울요양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 환자 보호자와 요양시설 근무자의 고충을 청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치매가 개인에게 국한된 질환을 넘어 국가적 재난으로 부상하자 정부는 지난해 치매 환자의 치료부터 돌봄에 이르는 전 주기를 책임지겠다며 ‘치매 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으로 경제적 혜택이 늘어난 것에는 일단 환영하지만 정작 체감하는 만족도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전국 256곳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고 치매안심요양병원을 34곳에서 79곳으로 확충하겠다는 목표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담인력 부족과 획일적인 운영 등으로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를 우리 사회가 포용하려면 진단과 치료를 넘어 돌봄과 관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치매 국가책임제의 핵심 자원으로 꼽히는 치매안심센터 256곳 도입은 사실상 내년으로 넘어갔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전국 시·군·구 256곳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9월 기준으로 정식 개소한 센터는 25.4%인 6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47곳은 기존 보건소 등에 설치돼 운영 중인 곳이고 새로 추가되는 144곳은 공간과 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부분 개소로 가동되고 있다.

치매안심센터의 인력난도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다. 각 센터당 평균 25명의 인력이 있어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센터당 근무인력은 평균 10여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치매 환자를 체계적으로 돌보려면 간호사·사회복지사·임상심리사·작업치료사 등의 전담인력이 필요한데 치매안심센터 근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지방에 위치한 일부 치매안심센터는 인근 병원과 연계한 협력의사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임현국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치매 환자의 규모와 특성이 상이하다는 점을 간과한 채 전국에 획일적인 치매안심센터를 도입해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치매 환자를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하나의 돌봄 생태계를 갖출 수 있도록 종합적인 관점에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 국가책임제를 달성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놓고도 논란이 여전하다.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의 조속한 시행을 위해 일단 인프라 구축을 중점으로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에서 2,023억원을 이미 집행했고 올해도 3,500억원을 배정했다. 앞으로 인프라 구축에 드는 비용 외에도 보험 보장성 강화에 필요한 예산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의 재원 조달 방안이 불확실해 자칫 선심성 행정으로 기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치매 국가책임제 시행으로 환자 1인당 1,800만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고 전체로는 12조6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 환자가 270만명에 이르는 오는 2050년에는 연간 48조6,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치매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만 정책을 집중하는 바람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증 치매 환자에 대한 보험 혜택을 적용하는 것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고령에 따른 단순한 노환이나 치매가 아닌 정신질환까지 치매 환자의 혜택을 받거나 무분별하게 치매 진단이 남용되면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 급증에 따른 요양보호사 등 전문 요양인력 수급과 관련한 대책이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만우 국회 입법조사처 팀장은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치매 국가책임제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의료시설과 복지시설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며 “치매 환자를 수용하는 대규모 시설에 재원을 쓰기보다 지역밀착형 치매안심센터와 전담인력 확충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치매 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높이려면 ‘치매’라는 용어부터 순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리석은 미치광이’라는 뜻의 일본식 한자를 그대로 가져온 바람에 ‘노망났다’는 표현과 동일시되고 있어서다. 일본은 이미 2004년 ‘인지증’으로 용어를 변경했다.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용어인 치매 대신 ‘인지장애’ 등으로 순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각종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치매 환자에 대한 묘사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녀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폭력성을 보이는 환자가 간혹 있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치매를 가벼운 질환으로 여겨서는 안 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례처럼 지나치게 공포심을 가지는 것도 문제라는 얘기다.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치매 문제는 이제 의료적인 접근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국민 삶의 질과 연계해야 한다”며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과 혜택도 중요하지만 환자 본인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지속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