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과 조재연 대법관의 법원행정처장 취임, 그리고 ‘청와대 특별감찰반 민간 사찰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수사관의 징계 결정 등이 ‘1월11일’ 한날에 맞물리면서 검찰·법원에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재판거래, 법관 사찰 등 사법농단 의혹의 최고 정점으로 꼽히는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1년 9월부터 6년간 사법부 수장을 지낸 인물이다. 한때 사법부를 진두지휘했으나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에 몰렸다. 게다가 김 수사관은 청와대 특감반 민간 사찰 의혹의 ‘트리거(방아쇠)’로 꼽힌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소환되는 때에 그가 마지막 인사권을 행사한 조 대법관은 사법개혁의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된다. 이래저래 검찰·법원이 역대급 ‘혼돈의 날’을 맞는 셈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 전 대법관은 11일 검찰 출석 당일 12년간 몸담은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힌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7년 9월까지 대법원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터라 이곳이 입장표명의 최적지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본인 생각과 소회,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당시 수장으로서의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피의자 신분의 고위인사가 검찰 출석 직전 다른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더구나 장소가 대법원이라는 점에서 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포토라인이 아닌 대법원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검찰을 압박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에서 발언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날 거의 같은 시각에 길 건너편 대법원에서는 조 대법관 취임식이 열린다. 고졸 행원, 사시 수석, 반골판사 등의 수식어를 지닌 조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지난해 7월 당시 양 대법원장 제청으로 현 정부 첫 대법관에 임명됐다. 법원행정처장의 임기가 통상 2년인데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행정처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인 점을 고려하면 그가 역사상 마지막 행정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조 대법관이 김 대법원장의 사법개혁 방향에 적극적으로 손발을 맞출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과 조 대법관의 법원행정처장 취임 등으로 검찰·법원 내 희비가 엇갈리는 날 대검찰청 징계위원회에서는 김 수사관에 대한 징계가 최종 확정된다. 그가 폭로한 청와대 특감반의 공공기관 임원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민간 사찰 의혹은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도 ‘쓰나미’급 파장을 불러온 사건이다. 김 수사관이 대검 징계위원회에 불참한다고 밝히기는 했으나 야당이 ‘범죄자 만들기’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어 징계 수위 결정 뒤에도 강한 정치적 후폭풍이 예견된다. 게다가 김 수사관 변호인단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 등을 부패행위 및 공익 침해행위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김 수사관 변호인단은 “김 수사관이 공익제보자로서 신분 보장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 수사관에 대한 검찰 징계 및 고발 같은 불이익 조치를 즉시 중단하지 않을 경우 공직신고자보호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안현덕·윤경환·오지현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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