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장려금은 대표적인 근로빈곤층 지원제도입니다. 일을 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소득 가구의 근로소득을 보조해 빈곤 완화와 경제활동 참가 촉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하위 소득층은 일해서 소득이 늘면 지원금도 많아지는 형태여서 도덕적 해이 우려가 적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저소득층 소득보전과 재분배 개선 효과가 더 강조되면서 소득주도성장의 중요한 축으로도 부각됐습니다.
문제는 확대 속도입니다. 정부는 올해 근로장려금 수혜자의 재산·연령·소득요건을 모두 대폭 완화해 지원 대상을 166만 가구에서 334만 가구로 늘렸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7%로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근로장려금을 받게 됐습니다. 가구당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 소득기준과 최대지급액도 확대해 총지급액은 1조2,000억원에서 3조8,000억원 수준으로 3배 이상 늘렸고, 연 1회 주던 지급방식은 연 2회 쪼개서 주는 식으로 바꿔 올해에만 4조9,000억원 가량의 세금이 EITC로 지출될 예정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속도 조절 및 소득 기준·지급액의 적정수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정부안 그대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소득 상위 20~30%에 해당하는 총소득 8분위 가구까지 EITC 지원대상이 되는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 발생하게 됐습니다. 김상봉·홍우형 한성대 교수가 국회예정처 의뢰로 쓴 ‘근로장려세제 효과성 제고방안’ 보고서를 보면 올해 8분위에 속하는 6,111가구에 총 31억9,100만원의 근로장려금이 지급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8분위 가구가 EITC 지급대상이 되는 것은 올해가 처음입니다.
소득분위는 전체 가구를 소득수준에 따라 10구간(1~10분위)으로 나눈 지표입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고소득층에 해당합니다. 8분위는 소득 상위 20~30%에 속하는 가구로 이들의 연평균 가구소득은 6,164만원입니다.
근로장려금 지급요건 완화로 인한 수혜 효과도 저소득층보다는 중산층에 더 많이 돌아가게 됐습니다. 올해 최하위소득계층인 1분위(소득 하위 0~10%)와 2분위(하위 10~20%)의 경우 근로장려금을 받는 가구가 지난해보다 가구 수는 1.3배, 총지급액은 각각 2.4배, 2.2배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중간소득계층인 5분위는 지급가구 수가 9.8배, 지급액은 13.7배나 늘어 증가폭이 훨씬 컸고 7분위도 증가폭이 각각 5.6배, 4.6배에 달했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근로장려금 수급가구 가운데 소득 4분위 이상 가구의 비중이 32.4%로 추정됩니다. 지난해(12%)의 3배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7~8분위만 따져도 0.5%→1.6%로 3배 넘게 늘어납니다.
이는 자영업자가 속한 가구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가구도 근로장려금 지원대상이 되면서 발생한 일입니다. 보고서를 쓴 홍우형 교수는 “평균 총소득이 4,000만원을 넘는 7분위 이상 구간에서 상당한 수의 EITC 수급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자영업자가 속한 가구는 가구소득이 8분위에 속해도 EITC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근로장려금은 연간 총소득인정액이 가구유형별로 단독가구는 2,000만원, 홑벌이가구는 3,000만원, 맞벌이가구는 3,600만원 미만이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각각 1,300만원, 2,100만원, 2,500만원에서 대폭 확대된 건데요. 자영업자가 속한 사업소득가구나 종합소득가구는 근로장려금 소득요건인 이 총소득인정액을 산출할 때 업종별로 실제 사업소득의 20~90%만 반영합니다. 이를 ‘업종별 조정률’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업종별 조정률 30%를 적용받는 소매업자의 경우 실제 소득이 6,000만원이어도 총소득인정액은 1,800만원이 돼 근로장려금 지원 대상이 됩니다.
그 결과 올해 근로소득가구는 근로장려금을 5분위까지 받지만 사업소득가구는 8분위까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7~2018년에는 각각 4분위, 7분위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홍 교수는 “자영업자의 경우 현행 업종별 조정률이 과도하여 상대적으로 총소득이 높은 가구에게까지 근로장려금의 혜택이 주어지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사업소득의 업종별 조정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근로장려금의 지급체계도 제도 취지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확대 개편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근로장려금은 사다리꼴로 설계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까지 맞벌이가구의 경우 연소득이 1,000만원 미만이면 소득이 높아질수록 지원액도 증가하는데, 이를 점증구간이라고 합니다. 가구소득이 1,000~1,300만원이면 최대지급액인 250만원을 정액으로 받고, 가구소득이 1,300만원 이상 2,500만원 미만이면 소득이 늘수록 지원액은 감소합니다. 각각 평탄구간, 점감구간이라고 부릅니다. 전문가들은 점증구간을 넓히는 것이 저소득층의 근로유인과 근로소득을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고용창출 및 근로소득 증가 효과는 주로 점증구간에서 나타난다”며 “EITC의 점증구간을 넓히는 방향으로 제도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 모든 가구유형에 대해 점증구간은 줄이고 평탄·점감구간은 늘리는 식으로 체계를 개편했습니다. 이런 식의 개편은 소득 재분배에는 긍정적이지만 저소득층의 근로유인을 높이는 데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었지만 반대로 된 것입니다. 홍 교수는 “이번 개편으로 단독가구의 점증구간은 46.2%에서 20%로 크게 감소한 반면 평탄구간은 23.1%에서 25%로, 점감구간은 30.8%에서 55%로 크게 증가했다”며 “근로유인을 효율적으로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고안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단독가구에서 점증구간이 44.4%로 매우 길고 평탄구간은 11.2%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급격한 확대는 저소득층의 소득보전과 분배 개선을 위해서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EITC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최근 임시·일용직, 영세자영업자가 큰 폭으로 감소했고 소득 하위 20% 소득 감소 등으로 분배상황 어려움도 심화됐다”고 개편 필요성을 밝혔습니다. 저소득층의 근로유인을 고취한다는 제도의 목적은 뒷전이 됐습니다.
홍 교수는 “EITC의 1차적인 목적은 근로유인의 고취이고 2차적으로 소득보전인데 이번 개편에서는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며 “무리하게 소득보전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노동공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고은경 중부세무사회 연구부회장은 “근로빈곤층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번 EITC 확대는 정부의 선심성 지출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예정처에 따르면 2019~2023년 간 EITC 확대로 전체 세수는 11조4,256억원 추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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