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마천루와 고궁들이 조화를 이룬 도시이듯 수원 또한 화성(華城) 안에 도심이 형성돼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수원 시민들에게는 일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다른 지역 사람들이 수원화성을 찾으면 현대와 과거가 어우러진 아름다움에 넋을 놓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화성은 정조와 정약용이라는 걸출한 천재들이 합작해 건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기 때문이다.
정조는 1776년 즉위 후에도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묘소를 현재의 융릉으로 옮기며 새로 건설한 신도시로 화성 안에 위치한다. 행궁은 재난 발생 시 왕이 머무르던 임시거처인데 화성행궁은 576칸으로 조선의 행궁들 중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기능 면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고 나서 1년에 한 번꼴로 열세 번이나 화성행궁을 다녀갔다. 정조가 머물지 않는 평시에 화성행궁은 관아 건물로 쓰였다.
정조는 화성의 축조 임무를 정약용에게 맡겼고 정약용은 1794년 공사에 착공한 후 3년 만인 1796년에 화성을 완공했다. 완성된 수원화성의 성곽둘레는 5.7㎞이며 동서남북에 4대문을 두었다. 정조는 화성행차를 할 때 창덕궁을 출발해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으로 들어와 행궁에서 1박을 하고 팔달문으로 나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성묘했다.
하지만 정조의 효심과 정약용의 실학이 열매를 맺어 완성된 화성행궁은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파괴됐고 1996년 1단계 복원공사가 시작돼 2003년 10월 일반에 공개됐다. 화성행궁의 바깥 담장 격인 화성 역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성곽으로 외적과 전쟁을 치른 적은 없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때 대부분 파괴돼 방치되다가 1975년부터 5년에 걸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이처럼 화성의 복원이 가능했던 것은 축성하면서 공사기록을 ‘화성성역의궤’라는 9권의 책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기록 덕분에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고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등재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이로써 화성은 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을 함께 가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유네스코 유산이 됐다. 이렇듯 찬연한 역사를 가진 화성 서쪽은 산성이고 나머지는 평지로 이뤄져 평산성으로 불리며 동쪽의 창룡문, 서문 격인 화서문, 남쪽의 팔달문, 북쪽의 장안문을 출입구로 두고 있었다. 이 중 정조가 드나들던 장안문이 정문의 역할을 했다.
낮에 화성을 둘러본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려 야경을 둘러봤다. 흥미롭게도 어둠에 묻힌 야경은 성곽 주위를 밝히고 있는 조명 덕에 낮의 경치보다 더욱 명료했다. 이 중 화홍문(華虹門)은 화성을 가로지르는 수원천의 북쪽과 남쪽에 세워진 두 개의 수문 중 하나로 이름의 화(華)자는 화성이라는 지명을, 홍(虹)자는 무지개를 의미한다. 화홍문은 일곱 칸의 아치 아래로 수원천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광교산에서 흘러내린 수원천은 평택을 거쳐 서해로 흘러나간다.
화홍문 언덕 위에 우뚝 선 정자는 화성 축조물의 백미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이다. 방화수류정 밖에는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연못과 정자의 조화야말로 수원화성의 백미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오르면 모습을 드러내는 연무대는 화성을 지키는 정조의 친위대였던 장용영 병사 5,000명이 무예를 훈련하던 현장이다. 그들의 위용을 지금도 엿볼 수 있는데 화성 신풍루에서는 상설공연으로 화~일요일 오전11시, 정조가 박제가·이덕무·백동수에게 편찬을 지시한 무예훈련교범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 공연이 열린다. 토요일 오후2시에는 궁중무용과 탈춤공연이, 일요일 오후2시에는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의 수위의식과 군사훈련 모습이 재현된다.
연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동북 공심돈이 눈길을 빼앗는다. 공심돈은 일종의 망루로 1·2층에는 서양식 화포인 불랑기를 배치해 뚫린 구멍으로 적을 공격하도록 했고 꼭대기에서는 적을 관측할 수 있었다. 공심돈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특히 서북 공심돈(보물 1710호)은 축조 당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데 미학적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글·사진(수원)=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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