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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앤 허친슨 부인 추방

1638년 매사추세츠 교회재판

매사추세츠 주의회 앞에 서 있는 앤 허친슨 동상.




‘여성은 회중 앞에서 대표로 기도할 수 없다. 남을 위한 기도의 대상도 여성에 국한된다. 성직자가 될 수도 없다.’ 요즘이 아니라 17세기 얘기다. 1630년 설립된 영국 식민지 매사추세츠는 그 정도가 심했다. 애초부터 교회와 사회가 하나인 청교도 공동체로 출발한데다 초대 총독 존 윈스럽의 신앙심도 남달랐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으로 통하는 ‘언덕 위의 도시(city on a hill)’라는 말을 일상화시킨 윈스럽은 율법 사회를 만들려고 애썼다.

종교 독재는 반발을 불렀고 앤 허친슨(Anne Hutchinson)이 그 중심에 섰다. 청교도 목사의 딸로 태어난(1591년) 그는 ‘하나님이 직접 계시하셨기에 목사와 교회는 중요하지 않다’며 신앙심으로 은총을 구하기보다 율법 준수만을 강조하는 교회에 비판을 퍼부었다. 부유하고 인심 좋은 산파이자 명설교자였던 허친슨의 가정예배에는 신자들이 몰려들었다. 교회는 급기야 그를 법정에 세웠다. ‘왜 분열을 조장하는 모임을 갖느냐’는 총독의 추궁에 ‘양심의 문제’라는 허친슨의 답변으로 시작된 교회재판은 17개월을 끌면서도 결론을 못 냈다. ‘교회와 사회의 평화에 분란을 야기했다’는 혐의가 입증되지 않자 윈스럽은 ‘성경에서 제시한 여성의 본분에 대한 이탈’이라는 죄목을 덧댔다. 결국 46세의 나이에 열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채 재판정에 섰던 허친슨은 1638년 3월22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에게 내준다’는 판결을 받았다. 파문과 추방!



매사추세츠에서 쫓겨난 허친슨 부부는 로드아일랜드로 이주해 새로운 마을을 세웠다. 포츠머스시가 이렇게 생겼다. 허친슨은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금슬 좋던 남편과 사별한 지 1년 만인 1643년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죽었다. 허친슨의 죽음을 신의 징벌이라던 매사추세츠주는 교회법을 더 강하게 고쳤다. 예배 불참 시 처벌과 목사 비방 금지 등을 담은 법률 아래 과열된 종교적 열망은 미국사의 오점이라는 ‘세일럼 마녀 재판(1692년)’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허친슨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세일럼 재판 순회판사의 5대손인 너새니얼 호손은 소설 ‘주홍글씨(1850년)’에 “이제는 성녀로 추앙받는 앤 허친슨…”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고령 시대를 맞은 지금 여성 인력의 활용 없이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판국에도 남성 우월주의와 종교적 선민의식은 여전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사의 키워드가 ‘언덕 위의 도시’다. 곧바로 ‘미국만의 언덕 위 도시’로 드러났지만./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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