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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도 서울대생이 만들면 특별하다?

■복세편살(복잡한 세대 편견없이 바라보자)

<4> 유튜브로 간 SKY 캐슬

학벌을 앞세운 유튜브 콘텐츠/유튜브 캡쳐




남동생에게 심부름을 시킨다면, 홍콩에 여행을 간다면, 한밤 중에 빨래를 한다면, 만우절에 술을 마신다면 어떤 재미난 일이 일어날까요. 글쎄요. 적어도 누군가 보고 싶은 일이 일어나진 않을 듯 합니다. 하지만 ‘고려대’에 다니는 남동생에게 심부름을 시킨다면, 홍콩 여행을 ‘의대생’들끼리 간다면, ‘연대생’이 한밤 중에 빨래를 한다면, ‘서울대생’이 만우절에 술을 마신다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자주 보이는 콘텐츠들입니다. 의대생들이 가는 여행은 ‘멋있는’ 여행이 되고, 심부름을 가준 남동생은 최고의 ‘고대’ 동생이 되곤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씻고 공부를 하는, ‘별거 없는’ 서울대생의 공강날 일상 브이로그(비디오형 블로그)도 별거 없지만은 않습니다. 이 콘텐츠는 64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는데요, 이처럼 서울대생의 공강날은 ‘서울대생이니까 별거 있는’ 일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의미하는 ‘스카이(SKY)’라는 단어는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주는 ‘만능 키(Key)’가 된 지 오래입니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름표를 한 번 달기만 하면 취업도 유리하고, 결혼도 유리하죠. 심지어 연예계에서도 ‘서울대생’이라면 더 주목받곤 합니다. 하지만 오직 ‘콘텐츠’로 맞붙는 것처럼 보였던 유튜브 세계에서도 ‘학벌’이 통할 줄은 몰랐습니다. 똑같은 학식을 먹어도 #서울대생의 학식은 특별해 보이고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하는 수강신청도 #연세대생 수강신청이 좀 더 궁금한 거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서울대 도서관 ASMR/유튜브 캡쳐


심지어 공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백색소음을 들려주는 한 채널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콘텐츠는 바로 #서울대 도서관의 백색소음이었습니다. 2시간짜리 영상은 무려 260만 회가 재생되며 말 그대로 대 히트를 기록했죠. 채널은 서울대 도서관 백색소음의 인기에 힘입어 #서울대 #법대 도서관 소음과 #서울대 #의대 도서관의 백색소음도 줄줄이 제작했습니다. 이처럼 유튜브 상에서 명문대 꼬리표가 인기를 끌자 ‘연고티비’, ‘샤플’, ‘스튜디오샤’ 등 이름만 들어도 학교가 떠오를법한 채널들도 대거 등장했습니다. 이 정도면 유튜브로 간 ‘스카이캐슬’이라고 봐도 손색없지 않을까요?

연고티비 채널(왼쪽)과 스튜디오 샤(오른쪽)/유튜브 캡쳐


■일상 보여주다 ‘대박 창업’까지… 유튜브에서도 잘 나가는 ‘스카이캐슬’

이 분야의 선구자를 꼽자면 ‘연고티비’가 있습니다. 연세대와 고려대 재학생들이 뭉쳐 약 2년 전 문을 연 채널은 각자의 학교 생활을 비교·소개하는 콘텐츠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작 당시 라이브 방송을 하면 10~20명 정도만 보던 채널이 현재는 25만명의 고정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채널로 우뚝 섰습니다. 특히 ‘만우절 장난 추천!’과 같이 연고대생이 만우절에 어떤 장난을 하는지 보여주는 콘텐츠나 ‘[연고라이프] REAL 대학생 술게임 알려드려요!’처럼 연고대생의 유흥 문화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통해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100만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죠. 연고티비를 운영하던 학생들은 탄탄한 팬층을 바탕으로 교육 MCM(다중채널네트워크)인 ‘유니브’를 선보이기도 했죠.

연고티비의 성공을 지켜본 다른 명문대 재학생들도 학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채널들을 속속 개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어느 학교인지 알 것 같은 ‘스튜디오샤’의 경우 지난해 9월 서울대의 ‘창업론 실습’을 듣던 학생 7명이 뭉쳐 개설한 채널입니다. 현재 2만 8,000여명의 구독자를 둔 채널은 ‘서울대생은 정말 다 전교 1등일까’ 라는 콘텐츠로 인기를 끌었죠. 서울대는 국내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만큼 ‘학교 생활’을 다루는 콘텐츠가 유독 많은데 재학생 여럿이 뭉쳐 진행하는 ‘샤플’, ‘S대 TV’는 물론 개인이 #서울대생을 전면에 내걸고 운영하는 채널도 여럿 돼 눈길을 끕니다.

연세대 학생과 고려대 학생의 유튜브/유튜브 캡쳐


여럿이 뭉치든 개인이 운영하든 간에 다루는 콘텐츠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학교’를 내세워 일상·공부법·학교 생활 등을 다루는 겁니다. 예컨대 ‘연세대생의 학점 공개’처럼 성적을 공개한다거나 ‘고대생의 취업준비’ 같이 면접을 준비하는 일상을 담아내죠.

이들이 ‘학교’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독자 대다수가 수험생인 점을 고려할 때 ‘명문대’를 내세우는 편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죠. ‘연대생의 하루’ 등의 콘텐츠를 올려 5만 구독자를 보유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버 새니는 “선망되는 학벌은 흥행보증 수표 ”라고 말합니다. 다른 유튜버 역시 “쉽게 접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이 궁금해 브이로그를 보는 것이고 명문대생의 브이로그는 그런 측면에서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광고에 PPL까지.. 상업화하는 #서울대생의 공부법



인기가 돈이 되는 유튜브 세상에서 높은 조회 수를 올리는 명문대생들의 콘텐츠는 자연스레 광고 수익으로 이어집니다. 명문대생의 유튜브 채널에 나가는 광고는 단가가 굉장히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실제로 한 광고주는 “실제 뛰어난 교육적 역량을 바탕으로 이룬 성공이 아니라 학벌을 내걸어서 만든 것이면서 터무니없이 비싼 광고 단가가 말이 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광고주 역시 ‘울며 겨자 먹기’지만 값비싼 광고비를 지불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유튜브 시장에서 수험생 대상의 교육 콘텐츠를 꽉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이처럼 대학 이름을 앞세운 채널들이거든요.

명문대생의 채널에는 교육 제품과 관련한 PPL 광고 문의도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PPL은 방송 중에 제품이나 브랜드를 슬쩍 노출시키는 기법이죠. 입시 콘텐츠를 표방하는 한 유튜브 방송의 제작사에 다녔다는 A씨는 “유튜브 수익은 조회 수가 아니라 광고를 통해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PPL을 많이 한다. 에듀 콘텐츠의 경우 교재 같은 교육상품 광고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기존의 콘텐츠와 잘 어우러지도록 PPL 티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기 드라마의 방식과 똑같은 셈인데, 드라마에서는 PPL 광고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공개하도록 돼 있지만 유튜브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이 같은 학벌 콘텐츠 대다수가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지나친 광고나 PPL은 무분별한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 수험생들은 아무래도 명문대를 다니는 누나·오빠의 ‘선택’에 흔들리기 마련이죠. 김 평론가는 “친근한 명문대 선배들이 특정한 펜이나 노트 등을 마치 직접 써본 학습 도구인 것처럼 얘기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사고 싶지 않겠냐”며 “간접광고라는 사실을 명기하지 않는다면 피해 입는 소비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 창업동아리의 ‘학벌 상품화’ 논란에 반박하는 서울대 졸업생의 글/페이스북 캡쳐


■학벌의 상품화 이대로 괜찮나

이런 콘텐츠를 보고 있노라면 정확히 지적하긴 어렵지만, 어딘가 껄끄럽습니다. 최근 ‘서울대생 볼펜’을 팔아 화제가 됐던 서울대 창업동아리 사례도 비슷한데요. 일부 서울대 재학생들이 온라인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와 ‘맘 카페’ 등의 커뮤니티에 “수험생들을 위해 서울대생이 직접 쓴 응원의 손편지와 직접 사용한 볼펜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고 쏟아지는 비판에 중단한 사건입니다. 물론 이에 반박하는 일부 서울대생도 있었습니다. 한 졸업생은 “자본주의에서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물건을 제값 받고 파는 게 뭐가 문제냐”며 “서울대생이 과외로 돈을 버는 것이나 서울대생이 사용한 펜을 판매하는 것이나 다를 게 뭔가”라고 볼멘소리를 냈죠.

하지만 서울대생이 과외로 돈을 버는 것과 서울대생이 쓴 ‘볼펜’을 파는 것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기란 어렵습니다. 과외 수업이 어쨌든 ‘교육 서비스’를 파는 것이라면 ‘서울대생 볼펜’이 파는 것은 ‘서울대생’이라는 브랜드입니다. ‘서울대’라는 이름표가 가져다주는 선망과 동경을 볼펜에 담아 값을 매긴 것이죠. 유튜브에서 서울대생이 자신의 일상을 일컬어 ‘대학생의 하루 일과’가 아니라 ‘서울대생의 일상’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말하자면 ‘학벌’을 상품화하고 브랜드화한 셈입니다.

시장 논리로 바라봤을 때 선망·동경을 파는 이들의 전략은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학이 가진 우리 사회의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학벌의 상품화’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란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이 지점은 현재 명문대생을 내세워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민인 부분이라고 합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의 진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 정보’를 전달하는 콘텐츠보다 명문대생의 일상을 조명하는, 소위 ‘선망’을 파는 콘텐츠들이 조회 수가 더 잘 나오는 상황을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학벌 노출 여부에 따라 확연히 다른 조회수를 보이는 한 유튜버의 콘텐츠들/유튜브 캡쳐


어쩌면 우리 사회는 학벌주의를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론 선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유튜버가 비슷한 콘텐츠를 제작해도 학교 이름을 드러낸 콘텐츠와 그러지 않은 콘텐츠의 조회 수가 확실히 차이를 보이는 상황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구독 조차도 학벌을 브랜드화하고, 상품화 하는 콘텐츠에 열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벌주의적 사고 방식이 만연한 탓에 우리도 모르게 그들만의 카르텔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마치 우리가 ‘SKY 캐슬’을 보면서 학벌주의와 지나친 사교육을 비난함과 동시에 ‘우리 예서 서울의대 가야 돼요’를 외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현정인턴기자 jnghnji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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