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 파로호(破虜湖)의 이름을 두고 바꾸자는 측과 유지하자는 측의 입씨름이 한창인 모양이다. ‘파로호’는 지난 1951년 한미 연합군이 중국군 2만4,000여명을 사살하고 호수에 수장시킨 화천전투의 승전을 기념해 이승만 전 대통령이 붙인 이름이다. 이를 못마땅해하는 중국인들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여 일제강점기 때 쓰던 대붕호(大鵬湖)로 명칭을 바꾸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얘긴데 듣기에 참 민망하다.
파로호와는 경우가 좀 다르지만 우리가 6·25전쟁에서 중국군을 몰아낸 승전지로 기록하고 있는 김화 저격능선전투를 중국은 상감령(上甘嶺)전투라고 달리 부르며 미군을 물리친 승전으로 기념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미항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요즘 중국은 ‘상감령전투’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관영 CCTV는 최근 황금시간대에 영화 ‘상감령’을 전국에 방영해 중국인의 반미의식을 한껏 자극했다. 미국에 파상공세를 받고 있는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는 CCTV 대담프로에 출연해 “중국의 뛰어난 인재들을 이끌고 상감령을 향해 진격할 것”이라며 미국에 전의를 불태웠다.
이제 미중 무역전쟁은 ‘루비콘강’을 건넜다. 1일 미국은 타이어와 치실 등 2,000억달러의 중국산 물품을 싣고 자국에 입항하는 중국 화물선에 대한 관세를 기존 10%에서 25%로 높여 물렸고 같은 날 중국도 미국산 수입품 일부에 대해 추가 관세를 품목별로 최대 25%까지 부과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중국 국무원은 2일 미중 무역협상 백서를 내놓고 “현 미국 정부는 2017년 출범 이후 관세를 무기로 위협을 가해왔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어떻게 귀결될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중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모든 주요시장에서 중국을 차단하는 것이 미국의 책무다. 중국의 자본시장 접근을 막고 기술 접근을 차단하면 그들은 곧 항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진찬룽 중국대외전략연구센터 주임은 미국에 항전할 세 장의 ‘킹카드’가 있음을 공언했다. “첫 카드는 희토류, 둘째는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1조3,000억달러)요, 나머지 카드는 미국의 중국 시장 접근을 통제하는 것”이다.
미중의 강경일변도에는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치적 속셈이 깔려 있다. 중국을 타깃 삼아 공격해야 내부결집이 잘 이뤄져 트럼프의 재선에 유리한 미국이나, 미국을 도발해 우위를 입증해내야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이어갈 수 있는 중국이나 무역전쟁에서 양보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이렇듯 미중이 냉철한 현실인식 없이 정치 득실만 셈하고 있으니 “미중 무역전쟁으로 군사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느니 “죽음까지 갈 수 있는 싸움”(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이라느니 비관적 전망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1949년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면서 김일성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설득해 남침을 묵인하게 만들려던 때를 돌아보게 한다. 헨리 키신저가 쓴 ‘중국이야기(On China)’를 보면 당시에는 미국도 중국도 전쟁을 바라지 않았으나 상황 오판과 정치적 탐욕이 맞물리면서 전쟁에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우리는 그때 전쟁을 예방하지도, 능동적으로 상황을 통제하지도 못했음을 아프게 기억해야 한다.
다시 70여년이 흘러 미중 간 전운이 짙어졌다. 이번에는 무역이 주요 갈등이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맞물려 한반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키신저가 썼듯 “(6·25)전쟁에 참여했던 어느 누구도 모든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한반도의 상황이 불길해진 지금, 1949년과 다르게 우리가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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