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에서 거론된 세 가지 안 모두 한전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의원님들께서 (전력산업) 기반기금이나 예산 활용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정부가 누진제 개편안을 확정 발표하기 하루 전인 지난 17일 나주 한국전력공사 본사. 김종갑 한전 사장은 산업자원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사상 최악의 실적 부진으로 추가 부담을 자체 예산으로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세금을 지원해달라며 국회에 손을 벌린 것이다. 누진제 개편 논의 중 한전 안팎에서 세금 투입이 대안으로 거론된 적은 있지만 김 사장이 이를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김 사장은 이날 “(누진제 개편을 통해) 여름이나 겨울에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냉난방권이 확보돼야 한다”면서도 “지난해 폭염으로 주택용 누진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하계 누진구간을 한시적으로 확대하자 한전은 3,587억원을 부담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누진제를 한시 완화하면서 세금으로 한전의 부담을 더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관련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4,000억여원의 추가 비용 중 정부 지원금은 고작 350억원에 그쳤다. 정부는 올해도 추가 재정을 확보해 한전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전은 또다시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 사장이 누진제 개편 논란에 직접 뛰어든 근본적인 이유는 한전의 기초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올해 1·4분기 연결기준 6,29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4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악의 실적이다. 부채비율은 올 3월 말 기준 173%에 달했다. 원전 이용률이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데다 대체발전원의 연료 가격도 불안정한 터라 부채율이 200%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산불 피해보상 등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겹쳤다. 김 사장은 이와 관련해 “(피해)신고 기준으로 정부가 발표한 피해액은 1,291억원으로 이외에 가재도구와 집기류 등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1,400억원 내외”라고 말했다. 김 사장의 호소에도 한전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한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야당 관계자는 “의원들도 이러다 한전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다”며 예산안 수용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한전이 겪는 경영난은 이른바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한전이 정상경영을 했다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인 만큼 정부가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산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정부가 세금으로 전기요금을 할인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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