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살아온 100년의 삶에는 격동의 역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그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분단과 한국전쟁, 경제성장, 민주화운동, 외환위기 등을 거쳤다. 1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나라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쳐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2030 청년들은 현재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삶이 힘겹다고들 한다. 청년들에게 지혜를 들려달라고 했다.
김 교수는 “연세대 학생들을 봐도 졸업을 앞두고 대다수는 취업 걱정을 한다”며 “아버지가 기업가라든가 큰 사업을 하면 별다른 걱정을 안 하는데, ‘금수저’라고 한다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들려주고 싶은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조선왕조 마지막 왕실에서 재산을 많이 물려받았거든요. 서울대에서도 성적이 우수해 기대가 컸는데 재산을 관리하느라고 직업을 못 가졌어요. 재산을 관리하면서 60세가 넘었을 때 만났는데 ‘차라리 가난하게 태어났으면 직업이 있고 삶의 영역이 있었을 텐데 재산 때문에 내 인생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받은 돈은 소중하지 않아요. 내가 번 돈이 소중하지. ‘금수저’라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에요.”
다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내 친구인 김태길 서울대 철학과 교수(2009년 별세)와 안병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2013년 별세)는 모두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다”며 “저는 가난해 초등학교도 대충 다녔지만 얻은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생이라는 100리 길을 50리부터 시작한 사람은 나머지 50리밖에 얻지 못하지만 0에서 시작한 사람은 100까지 얻을 수 있는 성취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고 비현실적인 교과서 같은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성취감이라는 것은 오늘 하루나 한 달, 1년, 평생을 살고 싶도록 추동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는 게 노학자가 전하고 싶은 삶의 지혜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 청년들이 남과 비교하지 말고 제 갈 길을 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교육자인 저에게도 책임이 있는 문제”라며 “획일적으로 한 줄을 세우는 교육이 문제지만 그럼에도 다들 가고 싶은 길을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학교 동창인 윤동주는 중학교 때 지금은 병아리 시인이더라도 나중에 큰 닭이 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줄 것 같았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며 “선배인 소설가 황순원도 60~70세가 되면 큰 작가가 될 거라고 했는데 그렇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조치대 철학과 출신이다. 경제적인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지만 가난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 보니 남보다 앞서게 됐다고도 했다. “저희 연세대 문과대학 교수들은 세브란스병원 교수 의사들보다 봉급이 적어요. 의사들은 고생을 많이 하니까 많이 받아야죠. 그런데 저는 철학에서 앞서니까 세브란스병원에서 강의도 많이 해서 좀 뒤처지는 의사보다 많이 벌었을 걸요. (웃음)”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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