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군사훈련이 끝난 뒤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북미 실무협상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형국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2일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군사적 위협을 동반한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전날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한의 카운터파트(대화 상대방)로부터 듣는 대로 실무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며 북측에 실무협상에 응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비건 대표는 판문점 회동을 언급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나의 팀에게 (작년 6월12일 나온 북미정상의) 싱가포르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실무협상 재개의 임무를 맡겼다”면서 “나는 이 중요한 임무에 완전히 전념해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대화 거부에 대한 표면적인 이유로 한미연합훈련과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 등 군사적 위협을 들고 있지만 비핵화 회담을 앞두고 군비 축소 등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려는 명분 쌓기용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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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은 한국군의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 등을 거론하면서 “첨단살인장비들의 지속적인 반입은 북남공동선언들과 북남군사 분야 합의서를 정면부정한 엄중한 도발로서 ‘대화에 도움이 되는 일은 더해가고 방해가 되는 일은 줄이기 위해 노력’하자고 떠들어대고 있는 남조선 당국자들의 위선과 이중적인 행태를 다시금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가증되는 군사적 적대행위는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대화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물리적인 억제력 강화에 더 큰 관심을 돌리는 것이 현실적인 방도가 아니겠는가에 대하여 심고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더욱이 미국이 최근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일본을 비롯한 조선반도 주변 지역들에 F-35 스텔스 전투기들과 F-16V 전투기들을 비롯한 공격형 무장 장비들을 대량투입하려 하면서 지역의 군비경쟁과 대결 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최대로 각성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변인은 “우리는 합동군사연습과 남조선에 대한 무력증강책동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행위로 된다는 데 대하여 한두 번만 강조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대미 비난을 재개한 북한은 동북아의 패권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의 밀착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개입은 북미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 북미 대화를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20일(현지시간) 미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론하자 “그들(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온건파인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과 관련 ‘탄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북한의 도발을 탄도 미사일이 아닌 단거리 미사일로 규정하며 의미를 축소해왔다. 하지만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온건파인 폼페이오 장관 마저 북한의 미사일 시험을 위협적인 도발로 규정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면서 북미 관계가 순조롭지 않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기대만큼 빨리 (북미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지 못했다”면서 “우리는 길이 울퉁불퉁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밝힌 점도 의미심장하다.
미국 국무부는 21일(현지시간) 한국을 방문 중인 비건 대표가 북측과 접촉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발표할 추가적 만남이나 방문이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실무협상에 응하지 않는 것은 결국 일괄 타결식 빅딜이라는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벼랑 끝 전술로 판단된다. 미중 갈등이라는 동북아의 정세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압박이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선을 위해 동맹국에 외교적 결례도 불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도 북한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김 위원장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이 길어질 경우 부담이 큰 만큼 이르면 오는 29일 최고인민회의 14기 2차 회의를 진행한 후 협상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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