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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스타화가 미공개 작품 만나다

신경희 회고전 '메모리-땅따먹기'

장르 넘나들며 '만드는 화가'로 유명

신경희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기억’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길이 2m는 됨직한 큰 화면을 작은 낙하산 모양의 이미지들이 무수히 얹혀 있다. 멀리서는 얼핏 ‘단색화’인가 싶었다. 한 걸음 다가가니 손으로 그린 드로잉인가 싶었으나 더 다가서니 철사로 바느질하듯 종이에 수놓아 새긴 형상들이다. 1990년대를 풍미한 인기작가였으나 50대에 요절한 현대미술가 신경희(1964~2017)의 1995년작 ‘화해할 수 없는 난제들-기억’이다.

작가의 2주기에 맞춰 미공개 작품들을 발굴해 낸 신경희 회고전 ‘메모리(Memory)-땅따먹기’가 오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고인의 서울대 선배이자 미술평론가 김복기 경기대 교수와 우정우 학고재 학예실장이 함께 기획한 전시다.

그림 속 낙하산 형태는 실제 낙하산이 아니라 어린 시절 땅따먹기 놀이의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신경희는 붓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작업했다.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만드는 화가’였던 그에게 손은 그 자체로 창조의 도구였다. 회화라기보다는 공예나 조각에 가깝고 시각적인 것을 넘어 촉각적이기도 하다. 가녀린 종이에 얹힌 철사는 그 자체로도 아슬아슬한 자태지만 그림자까지 어우러져 미묘함을 더한다.



신경희는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교 타일러 스쿨 오브 아트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제3갤러리’라는 곳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판화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어 동시대의 조형언어를 폭넓게 받아들였다. 1994년에는 국내 최초의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에 참가해 ‘차세대 베스트 10’에 선정됐고, 그 해 가을 39세 이하 작가를 대상으로 한 ‘공산미술제’ 대상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94’전에 초청됐다. 왕성한 활동으로 1997년에는 ‘석남미술상’까지 휩쓸었다. 30대 초반에 화단의 신성(新星)이 됐다. 미국의 모교 템플대학은 1999년에 그를 ‘가장 성공한 졸업생’으로 선정했다. 해외전시가 잇따랐고 출강도 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병마에 시달리다 2017년에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전시를 기획한 김복기 교수는 작가 신경희의 가치에 대해 “구상과 추상, 서사와 기호가 절충의 지점을 찾은 그 만의 조형 어법이 단연 1990년대 한국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만하다”면서 “지금은 미술에 디지털아트까지 더해지고 음악·문학·공연 등 장르융합적인 예술이 활발하지만 그때만 해도 회화,조각,판화 등의 장르 구분이 엄격했음에도 작가는 판화와 퀼트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다”고 평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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