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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국민연금, 소재·부품산업 '극일' 투자 자금 조성 여부 이달 결론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본사 전경./연합뉴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 국내 부품·소재 분야 기업에 국민의 노후자금을 쏟아붓는 이른바 ‘극일(克日)’ 투자자금 조성 여부가 이르면 이달 결정이 난다. 정부가 마련한 국민연금의 제도개편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끝내 무산된 상황에서 정책자금 동원이 이뤄질 경우 고갈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관계부처 및 국민연금기금에 따르면 기금운용위원회는 이달 안으로 국민연금기금에 일본 부품·소재 산업을 특정해 투자할 수 있도록 대체투자 부문을 신설하는 안건을 정식 안건으로 채택하기 위한 회의를 열 계획이다. 이 안건은 지난달 기금위원인 이찬진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가 제안한 방안이다. ★본지 8월14일자 1·4면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식 안건 채택 여부는) 위원회 위원 3분의1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며 “추석 연휴 이후 위원들이 상의할 예정이며 9월 안으로 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투자 영역에 소재·부품군 신설… 국민연금, 첫 메자닌 직접투자

이 위원이 제안한 극일 투자자금의 조성 방안은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영역을 코스닥에 상장한 소재·부품산업 중소기업의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신종자본증권까지 넓힌다는 게 골자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주식·채권, 해외주식·채권, 대체투자, 단기자금 등 여섯 개 부문으로 나뉘어 운용된다. 그중 인프라와 부동산·사모펀드 등 상대적으로 투자 영역이 넓은 대체투자 영역에서 국내 소재·부품 기업에만 투자하는 부문을 신설하겠다는 것.

안건이 통과될 경우 국민연금의 첫 ‘메자닌(Mezzanine)’ 직접투자가 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사모펀드(PEF)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투자해왔다. 메자닌 투자가 손실위험이 큰 만큼 무한책임사원(GP)인 운용사를 통해서 수익률은 극대화하되 손실률은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대체투자 영역에 해당군을 신설할 경우 국민연금이 직접 신종증권자본을 통해 소재·부품산업 기업에 자본을 확충해주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규모도 조(兆) 단위를 넘을 수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대체투자 영역에서 운용되는 기금 규모가 81조4,000억원(11.9%)에 달한다. 국내로 영역을 좁힐 경우 24.6조원 가량. 국민연금은 대체투자의 비중을 15% 가량까지 늘리는 중기 자산배분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 명단. 일부 정부위원은 인사 발령 등으로 성명이 바뀌었음. <자료:보건복지부>




親정부 위원 과반 넘어… ‘쌈짓돈’ 전락 우려

이번 방안이 자칫 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은 결정권을 쥔 곳이 정책 당국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당연직인 관계부처 차관 등 정부위원이 6표를 쥐고 있다. 정식 안건으로 채택하기 위해 필요한 표가 7표에서 불과 1표가 모자란다. 더욱이 이번 안건을 제안한 이 위원의 경우 올 초 한진그룹 주주총회에서 스튜어드십코드를 행사할 당시에도 발을 맞춰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식 안건으로 채택된다면 조성 여부도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금위 구성이 사실상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연구기관(2표)과 지역가입자 대표 농·수협중앙회(2표) 등을 포함하면 친정부 성향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의결 정족수인 과반 이상의 표를 정부가 확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 국민연금을 국가 예산처럼 동원해 왔던 것도 이 같은 의사결정 구조와 관련이 깊다. 참여정부 당시인 지난 2004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10조원 규모의 한국형 뉴딜 사업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여유재원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크게 일었던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 등 야당뿐 아니라 보건복지부를 이끌던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같은 논란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되풀이됐다.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연기금 기관의 해외자원개발 투자역량 강화방안이 논의됐고 국민연금 기금위는 2011년 해외자원기업에 대한 사모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으로 투자요건을 완화했다. 국민연금은 이후 사모펀드를 통해 미국 이글포드 등 모두 3개의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정부가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국민연금을 동원하기로 결정을 내릴 경우 9월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부의 안건으로 상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의 안건이란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논의 안건으로 올린 이후 바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경우 10월 10일로 예정된 국정감사 이전에 결론을 내려 논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더내자” 사회적 합의는 요원… 고갈시기 더 빨라질 수도

문제는 국민연금이 맞닥뜨린 고갈 위험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우선 지난해 발표된 제4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41년(1,778조원) 정점을 찍은 뒤 2042년 적자로 돌아서 2057년 완전히 고갈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4개 안을 담은 제도개편안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사회적 합의는 요원한 상황. 지난달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국민연금 개편 단일안 합의에 실패한 뒤 공을 국회로 넘겼다.

더욱이 장기추계의 핵심 변수인 합계출산율은 0.977명까지 떨어져 있다. 4차 장기재정 추계가 가정한 합계 출산율(△2020년 1.24명 △2030년 1.32명 △2040년 이후 1.48명)을 감안하면 고갈속도는 훨씬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1,800조원에 육박한 자산을 거느린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자산 처분에 나설 경우 시장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고, 이게 고갈 시점을 더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고갈 시기를 늦출 유일한 버팀목인 운용 실적도 그리 좋지 않다. 1988년 이후 누적 수익률은 5.43%(6월말 현재)에 달하지만 최근 성적표는 암울하다. 지난해 -0.92%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첫 운용손실을 기록했다. 올 들어 6월 말까지 7.19%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최근 주식시장 붕괴 등을 감안하면 연말 성적표는 이보다 더 나쁠 수밖에 없다.

운용 전문가 없이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에 정부의 입김까지 가세할 경우 운용 실적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전 금융위원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자율성과 독립적 의사결정, 적극적인 수익성 제고를 위한 노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상훈·백주연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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