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3월11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도쿄 북동쪽 370㎞ 지점의 도호쿠 앞바다에서 터진 규모 9.0의 초강진으로 가동 중이던 1·2·3호기의 원자로를 긴급정지한다. 하지만 50분쯤 뒤 11m가 넘는 쓰나미가 닥치면서 정기검사 중이던 4~6호기까지 원전이 모두 침수되며 전원이 끊긴다. 원자로 노심(爐心)을 식혀주는 냉각수 유입이 중단된데다 비상 냉각장치마저 무용지물이 돼 핵연료가 노출,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원전 사고에서 최고 위험단계인 7등급으로 1986년 소련(현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동급인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시작이다.
결국 다음날 오후에도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1호기의 원자로가 녹아내리며 수소폭발이 일어나 원자로 건물 외벽이 날아간다. 엄청난 방사선이 주변 지역으로 퍼지는 가운데 3월14일에는 3호기의 원자로도 녹아 수소폭발이 발생하며 사태가 갈수록 악화된다. 3월15일에는 2호기와 4호기에서 잇따라 수소폭발이 발생하며 원자로 격벽이 붕괴돼 또다시 엄청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다. 원전 부지 내 흙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 검출되고 원전 주변에서 요오드·세슘·스트론튬·텔루륨·루테늄·란타넘·바륨·세륨·코발트·지르코늄 등 암과 기형을 유발하는 방사성 물질이 쏟아져나왔다.
이 과정에서 원자로가 녹는 것을 막기 위해 3월13일부터 뿌린 바닷물이 방사성 물질을 잔뜩 함유한 채 배출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4월4~10일에 오염수 중 저농도 1만1,500톤을 바다로 방출했다고 발표했으나, 그동안 원전 사고에 관해 많은 거짓말을 해왔다는 점에서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115만톤이 넘는 오염수가 저장탱크에 보관돼 있고 매일 200톤이 쌓이고 있다. 오염수는 냉각수와 녹아버린 원자로 노심이 지하수와 만나 생기는데 지하수 중 일부는 탱크에 담고 있지만 절반 이상은 회수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일부는 지금도 바다로 배출되고 있다고 일본 정부도 인정한다. 오염수는 앞으로도 수십 년, 최대 100년간 배출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내년까지 저장탱크의 용량을 137만톤으로 늘리기로 했으나 오는 2022년 여름에 오염수로 다 찰 것으로 보고 있다.
다케모토 나오카즈 일본 과학기술상은 이달 1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방사능 오염수는 정화 과정을 거쳤고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tritium)를 제외하고 다른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의 반감기가 12년이라 큰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억지도 부린다. 도쿄전력 홈페이지에는 액체인 삼중수소가 몸에 들어와도 신진대사를 통해 즉시 배출된다는 황당한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완전히 다르다. 유럽방사성리스크위원회(ECRR)는 삼중수소가 저농도라고 해도 마시거나 호흡하면 DNA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유전자·지방 등의 수소를 대체하게 되며 서서히 헬륨으로 변해 DNA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세포 사멸, 생식기능 저하, 유전병 등의 우려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린피스재팬은 지난달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인체에 흡수되면 유전자가 손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5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2명이 고농도 삼중수소에 피폭돼 숨진 사례도 있다. 고농도 삼중수소의 경우에는 기형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고체 상태인 세슘·요오드·플루토늄 등과 달리 삼중수소는 아직 정화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바다에 배출되면 물고기 등 수산물에 방사성 물질이 쌓여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다. 만약 오염수가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될 경우 200일과 340일 뒤 각각 제주도 해안과 동해 전체에 퍼질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방류 3년 후 미국도 서부연안 전역으로 오염수가 퍼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독일 킬대 헬름홀츠 해양연구소가 암을 유발하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 137의 확산을 예측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오염수에 삼중수소 이외 다른 방사성 물질이 없다는 것도 믿기 힘들지만 삼중수소의 농도도 높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도쿄전력 최근 보고서에는 세슘 등은 정화하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진다고 통계를 내놨지만 삼중수소는 기준치가 6만㏃인데 최근에도 100만㏃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출신인 김익중 전 동국대 의대 교수는 “우라늄이 깨질 때 나오는 방사성 물질 약 1,000종 중 반감기가 비교적 짧은 것을 제외하고 200여종은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오염수에 삼중수소만 있고 나머지 방사성 물질을 제거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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