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0~1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재개하는 고위급 무역협상을 앞두고 협상 전망을 어둡게 하는 악재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이 신장위구르와 홍콩의 인권 문제를 내세워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중국 측은 무역협상 의제를 줄이려 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앞서 지난 7월의 상하이협상 때처럼 ‘빈손’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이 오는 15일 추가 관세 인상까지 예고한 상태여서 무역전쟁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블룸버그·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중국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의 억압을 끝내야 한다”며 “이에 관여한 중국 관리들에게 비자 발급 제한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위구르족 등 이슬람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 구금과 학대에 책임이 있는 중국 정부 관리와 공산당 간부들, 그리고 그들 가족의 미국 입국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 발표는 미 상무부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의 억압과 관련해 28개 중국 정부기관·기업을 제재 목록에 올린 지 하루 만에 추가로 이뤄졌다. 전날 제재 대상에는 하이크비전·다화테크·메그비테크 등 감시카메라 업체와 인공지능(AI) 관련 아이플라이테크·센스타임 등 총 8개 업체가 포함됐다. 신장 지역 정부 공안국과 19개 산하기관도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내정간섭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중국 정부가 반중국 성향의 단체에 소속돼 있거나 지원을 받는 미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비자 제한에 대한 맞불 성격인 셈이다.
협상에 부정적인 소식은 이뿐이 아니다. 블룸버그는 이날 미 당국이 정부 연기금의 대(對)중국 투자 차단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재차 내놓았다. 미국은 앞서 중국 기업들의 미 증시 상장 제한 등 자본시장 봉쇄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중국과의 자본교류를 제한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홍콩 시위 사태를 두고 미중이 직접 대립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미국프로농구(NBA)의 대릴 모레이 휴스턴로키츠 단장의 ‘홍콩 시위 지지’ 트윗으로 시작된 파문이 중국 내 스포츠 시장에서의 NBA 퇴출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방송들이 NBA 경기 중계를 보이콧한 데 이어 중국 후원기업들도 속속 후원 철회에 나서고 있다. 중국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저자세를 보인 NBA 측에 대한 미국 내 여론도 악화하면서 무역협상 분위기까지 흔들리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당국이 홍콩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강압적인 수단을 쓴다면 무역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상황이 매우 악화할 경우 어떠한 옵션도 배제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중국군의 무력진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협상 자체를 놓고 봐도 중국 측이 무역협상 의제에서 정부보조금이나 지식재산권 보호 등 산업·통상정책을 배제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져 난항이 예상된다.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 정국의 틈을 타고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와 관세 철폐 또는 유예로만 이번 협상 의제를 한정하는 이른바 ‘스몰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불공정 제도·관행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무역전쟁을 발동한 미국의 당초 의도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수 차례 “미국은 포괄적인 무역협상을 원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자 무역협상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지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번 협상의 중국 측 대표인 류허 부총리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 타이틀을 달지 않았다. 류 부총리의 결정권이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협상단이 당초 계획보다 이른 11일 귀국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미 정부는 15일부터 중국산 제품 2,500억달러어치에 대한 관세율을 25%에서 30%로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번 무역협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예정된 관세 인상이 단행되고 이는 또 중국의 보복조치를 부를 수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이번주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그나마 협상 동력을 이어가는 유의미한 성과라도 나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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