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에도 심화하는 안전자산 선호와 최근 잇단 펀드 사태로 투자상품 판매가 어려워진 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투자자는 물론 은행 스스로도 손익구조가 복잡하거나 즉시 유동화가 어려운 상품은 일단 피해야 한다는 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영업환경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이자 장사’ 대신 비이자이익을 늘려야 한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초저금리 기조에도 은행 정기 예적금을 필두로 한 안전자산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9월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 5곳의 정기예금 잔액은 653조6,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3.5%(22조1,000억원) 증가했다. 1·4분기 2.5%, 2·4분기 2.9%에 이어 3%대 증가율로 올라섰다. 금리 인하 기조가 짙어진 올 들어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더 많은 돈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강우신 기업은행 분당서현역지점장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투자처가 안갯속이다 보니 현금을 비축하는 분위기”라며 “한국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경기가 더 안 좋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자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들도 수익성보다는 안전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적극적인 투자를 권유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있지만 최근 파생결합상품(DLF) 손실 논란과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 등으로 몸을 사리는 경향이 짙어진 까닭이다. 투자자는 물론 은행의 영업 일선에서 수익률은 낮아도 안전하거나 손익구조를 이해하기 쉬운 상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임 사태를 타산지석 삼아 즉시 유동화가 가능한지 여부도 투자할 때 최우선순위가 됐다. 결국 고수익을 추구하는 구조화 상품 대신 정기 예적금이나 채권형 펀드, 달러 신탁 같은 익숙한 상품만 은행 창구에 남는 양상이다.
박승안 우리은행 TC프리미엄강남센터장은 “시장이 이미 안 좋은 상황에서 이뤄진 금리 인하는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수익률을 따지며 손익구조나 유동화가 복잡한 상품을 사는 것보다 기존 자산을 ‘지키는’ 전략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연광희 신한은행 PWM잠실센터 팀장도 “최근 금융권의 여러 가지 문제로 리스크가 높은 펀드를 추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손익구조를 이해하기 쉽고 익숙한 상품을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초저금리와 가계대출 규제로 이자수익 확보에 빨간불이 켜진 은행에는 또 다른 걱정거리다. 이제껏 의존해온 이자이익 대신 다양한 상품 판매를 통한 수수료 수입으로 비이자이익을 늘리겠다는 게 은행들의 공통된 목표였지만 이마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판매 채널에 대한 내부통제가 강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 구조화 상품 판매 자체가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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