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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6,000배’ 독성 비료...반려동물 산책길, 황천길 될라

식물생장용 유박비료 무분별 살포

청산가리 6,000배 독성 물질 함유

고소한 냄새에 사료와 생김새 닮아

먹이로 오인해 삼켰다 사망 잇따라

농진청 "위험성 알지만 대안 없어"

유박비료가 살포된 후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서울 마포구 내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공고문./허진기자




서울 마포구에 사는 정소라(29)씨 부부는 지난 23일 5년을 함께한 반려견과 예고 없는 이별을 맞았다. 사흘 전 산책을 나간 정씨의 반려견은 여느 때와 달리 냄새를 맡던 중 갑자기 화단의 흙을 삼켰다. 정씨는 즉각 반려견의 입에 들어간 흙과 사료 비슷한 알갱이들을 빼냈지만 그날 이후 시름시름 앓던 반려견은 곧 숨을 거뒀다.

공원이나 아파트 산책로 등 반려동물들이 오가는 길 인근에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 비료가 무분별하게 뿌려지고 있어 반려동물 주인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하지만 당국은 이러한 비료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대책 마련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씨의 반려견이 삼킨 것은 유박비료다. 반려동물의 사료처럼 생긴 이 비료는 봄철 식물 생장·농작 목적으로 살포되는데 독성 물질인 ‘리신’을 함유하고 있다. 리신은 청산가리의 약 6,000배에 달하는 독성을 지녀 심한 경우 이를 삼킨 동물 등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고소한 냄새를 풍겨 반려·야생동물들이 호기심을 갖기 십상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아파트 단지 등에서 흙장난을 할 때도 많아 피해가 우려된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유박비료와 관련한 피해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다.

19일 정씨가 사는 아파트단지에는 총 120㎏가량의 유박비료가 뿌려졌다. 아파트단지 주민들과 반려동물들이 이용하는 산책로 주변 화단 등이 주요 대상이었다. 반려견이 병에 걸린 것이 유박비료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정씨가 항의하자 관리사무소는 뒤늦게 ‘화단용 유기질 비료를 뿌렸는데 강아지 또는 고양이가 먹고 폐사할 수 있다’는 안내를 써 붙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다른 주민들까지 이 사실을 알고 항의하자 관리사무소 측은 비료가 뿌려진 땅을 뒤엎는 등 임시조치를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비료가 뿌려진 장소에는 이를 먹고 폐사한 동물들의 사체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이달 초 반려견과 함께 경기 남양주의 한 애견 운동장을 찾은 A씨도 운동장 인근에 살포된 유박비료를 반려견이 삼킨 뒤 죽었다며 하소연했다. A씨는 반려견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애견 운동장에 이 같은 독성 물질이 있을지는 상상조차 못했다.



유박비료의 유해성에 깜깜이인 것은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3월 말 인천 미추홀구청은 관내 6개 공원 산책로 주변 화단과 녹지 등지에 총 50포의 유박비료를 뿌렸다. 민원이 빗발치자 구청은 살포한 비료들을 전부 수거했다고 밝혔지만 손톱보다 작은 알갱이로 이뤄진 유박비료의 특성상 50포나 되는 양을 일일이 손으로 수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이를 삼킨 동물 등의 피해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유박비료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비료 유통업자와 견주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농촌진흥청의 한 관계자는 “유박비료 포장지에 경고문구를 표기하도록 하고 있으며 견주들이 반려동물을 산책시킬 때 목줄을 짧게 잡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료관리법도 유박비료를 금지하지 않고 있는데 식물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는 힘들다”며 “가격경쟁력 등 때문에 유박비료가 범용적으로 선호되는 것이 현실이어서 현재 다른 대안을 고민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유박비료가 살포된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이 항의하자 관리사무소는 땅을 뒤엎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28일 찾은 해당 아파트 화단에는 여전히 유박비료가 남아 있다./허진기자


이에 대해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은 “유박비료는 야생·반려동물은 물론 비료를 생산하는 농부나 아이들에게도 비말 등을 통해 얼마든지 흡입될 수 있다”며 “유박비료 외에 우리나라 토종 깻묵으로 만든 다른 비료들을 사용하는 방안이 있지만 비용 측면 때문에 정부가 사실상 현 상황을 방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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