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갖고 있는 방대한 고객 행동·금융정보를 암호화해 사고팔 수 있는 ‘데이터 거래소’가 11일 출범했다. 정보를 구입한 기업은 이를 토대로 맞춤형 상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데이터 활용을 못하는 기업은 경쟁사에 뒤처질 수밖에 없어 산업계에 ‘데이터 전쟁’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날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융보안원·결제원, 신한은행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데이터 거래소 출범식을 개최했다. 금융보안원이 운영하는 데이터 거래소는 시범운영을 거쳐 연말에 본운영에 돌입할 계획이다. 금융정보뿐만 아니라 통신·유통 등 일반상거래 기업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데이터 판매업체가 매물을 거래소에 등록하면 관심 있는 기업이 구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구매업체가 원하는 데이터 형태 등을 공급자에게 요청하는 수요자 중심 거래 시스템도 지원한다. 현재 총 13건의 시범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용정보업체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는 전국 행정동 단위 성별·연령별 출퇴근 정보 빅데이터를 외부기관에 판매했다. 이를 구입한 기관은 예컨대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로 어디로 출퇴근을 하는지, 이들의 나이와 성별은 무엇인지 파악해 동선에 맞춤형 광고를 게시하는 등 정교한 마케팅을 할 수 있다.
신한은행은 서울시 지역 단위 거주자의 소득, 지출, 금융자산 정보를 판매했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구 거주민의 평균 소득은 얼마인지, 한 달에 어느 정도를 지출하며 금융자산 규모는 얼마인지 등의 정보가 담겨 구입한 기업은 잠재 고객층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신한카드는 맞춤형 광고 제공을 위한 카드 소비 데이터, 창원시민 카드 소비 데이터, 1·4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비동향 데이터 등을 판매했으며 반대로 국내 상용차 표준시세 빅데이터를 사들이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데이터 거래가 활발하다. 도요타자동차는 차량의 위치 및 시간대별 이동 속도를 도시계획을 하는 공공기관과 택배회사에 판매했고 도시계획, 배송 효율화에 활용됐다. 호주의 웨스트팩·커먼웰스은행 등도 고객 금융정보를 판매하고 있다.
데이터 가격은 시장에서 거래 당사자 간 협의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거래소 출범 초기에는 가격 형성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므로 데이터 작업 비용, 데이터 활용 기대 수익 등을 산정 기준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아울러 초기 거래 활성화를 위해 바우처를 지원해주고, 본운영까지 거래 수수료도 면제해준다. 국내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될지 가늠은 안 되지만 미국의 경우 2017년 데이터 거래 규모가 약 1,500억달러(약 183조원)에 달했다. 중국도 정부 주도로 설립된 ‘귀양 빅데이터 거래소’의 경우 알리바바·텐센트 등 약 2,000여개 기업이 회원사로 데이터를 거래하고 있다.
정보 유출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거래소는 데이터를 거래소 내에서 분석하고 결과만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분석 플랫폼 형태의 데이터 제공방식도 지원할 계획이다. 또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8월5일 이후에는 판매자가 요청할 경우 데이터의 익명·가명처리 적정성, 구매자의 정보 보호 대책 적정성을 거래소가 확인한 후 구매자에게 전송하게 된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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