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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외교관들 “한일갈등 해법, 명분보다 실익 추구한 DJ에 배워라”

G2 신냉전으로 경제·외교 벼랑끝

한일, 파국 고집하면 결국 자충수

갈등 딛고 동반자관계 새 지평 연

‘김대중-오부치선언’의 통찰력 배워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1998.10.8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세계를 양분하는 ‘신(新)냉전’에 돌입한 가운데 일본 전범기업의 재산환수 문제로 한일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미일 삼각동맹’의 균열과 한국의 외교적 손실에 대한 우려가 크다.

특히 외교가 안팎에서는 한일관계를 지난 1998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서 배우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10월8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합의한 날 일본 의회 연설에서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임진왜란과 식민통치)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22년 전 DJ의 미래지향적 발상전환으로 한일관계가 새 지평을 열었듯이 이제 한국이 ‘미래’를 말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최근 한일갈등을 우려하는 원로외교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반일감정 부추기는 것이 이득이라는 착각...DJ는 달랐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과 주일 한국대사를 지낸 라종일(80) 가천대 석좌교수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DJ·오부치 선언을 통해 한일 양국은 문화장벽을 없앴고 그 덕에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며 “좁은 이득만 생각하며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반일·반한감정을 부추기는 것이 자기에게 이득이 된다는 생각이 한일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의 한일관계 화해를 통해 한국이 이득을 봤다”며 “DJ 같은 정치인이 있으면 (지금의) 한일갈등을 잘 풀어나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미중 갈등이 극대화되는 지금 동북아시아 자유 진영의 주축인 한일관계가 파국까지 치닫도록 두는 것은 한국에 자충수일 수밖에 없다. 김숙(68) 전 주유엔대표부 대사는 “미국과 중국이 ‘편 가르기’를 하는 상황에서 한미일이 전략적 목표를 약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며 “중국이나 북한 입장에서 한미일 가운데 한국은 가장 약한 고리인데 이럴 때일수록 우방국들에 신뢰를 주는 쪽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0815A04 외교안보


실제로 최근 미국과 중국은 코로나19 책임론에 대한 설전에서 출발해 외교·경제·국방 등 전방위적으로 충돌하며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른바 ‘중국 때리기’를 오는 11월 대선의 최대 전략으로 삼았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양대 패권국가로서의 입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따라서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은 일본을 외교적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1·2차관을 모두 지낸 신각수(65) 전 주일 한국대사는 “남북·한미관계도 껄끄러운 상황에서 한일관계까지 역대 최악이 되면 우리 외교입지가 한꺼번에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일제 자산매각 사법부 결정이지만 외교적 노력 포기해선 안돼”
강제징용 판결과 강제 자산 매각 결정은 사법부의 영역이라도 정부까지 외교적 노력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건 원로 외교관 모두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고위 실무급들이 나서 틀에 박힌 대화보다는 허심탄회한 논의로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국 국민들은 반일·반한 정서가 여전하고 최고위급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일 갈등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자세가 역력하지만 정부 당사자들 간에는 공시송달의 효력이 발생하는 8월4일 전까지 얼마든지 창의적 방안을 위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삼권분립이 원칙이기는 하나 외교적 교섭 등을 이유로 ‘사법 자제’를 강구하는 방법도 충분히 생각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창일(68)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한일의원연맹 회장)은 “아베 총리가 올 1월 초만 해도 (강제징용 판결과 수출규제 문제를) 대화로 풀려는 의지가 있었다”며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지지도가 안 오르니 한일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인 제공은 일본이 했지만 정치는 생물과 같다 보니 그 사이에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본다”며 “지난해에도 당장 (일본 수출규제로) 나라가 망할 것 같이 반응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8월4일까지 여유는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김 전 대사 역시 “한국과 일본이 미래 비전을 위한 공동의 전략적인 목표를 갖고 (접근)한다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게 나올 수 있다”며 “법원에서 공시송달 결정이 나오기는 했지만 양국 간 외교 협상이 진행 중일 때는 국익 차원에서 사법 자제를 통해 강제 매각 집행을 유예하는 요청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명분에 대한 집착과 여론몰이보다 실익 위주 접근 필요해”
외교안보 원로들은 특히 한일 간 대화 과정에서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최고위급들이 직접 사안을 챙기기보다는 외교부 등 실무 부처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내각부와 청와대가 외교 사안을 모두 주도하다 보면 각자 자국의 정치적 요소를 너무 의식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신 전 대사는 “일본은 아베 총리와 내각부가 (한일관계 작업을) 다하고 우리는 청와대에서 다하는 형국”이라며 “옛날에는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이 감정을 배제한 채 만났는데 지금은 외교 사안에 국내 정치적 요소의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김 전 대사는 “정상회담은 합의에 실패할 시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위험이 있다”며 “실무진이 나서기에는 늦었고 장관급과 같은 고위 간부들이 대면으로 만나 창의적 방안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역시 명분에 대한 집착이나 여론몰이식 대응을 내려놓고 국익과 피해자들을 위한 실익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잇따랐다.

라 교수는 “정치인들이 사법부가 결정했으니 안 된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직접 외교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며 “사법부 판단만 필요하다면 외교부와 정치인은 왜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나름 뭔가를 해보려다 시민사회가 반대하고 청와대가 받아주지 않으면서 막혔다”며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도 외교를 옳고 그른 입장만 따져서 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중국에서 만난 한일외교장관/연합뉴스


신 전 대사는 “피해자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정부의 노력이 거의 없다”며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과 우리 사회가 느끼는 감도 차이는 엄청난데 반일 명분만 내세우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피해자 중심주의로 해결한다면 피해자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피해자들은 사실 돈을 받는 데 가장 관심이 많다”며 “대부분 소득 하위계층인 이분들은 명분보다는 현실적으로 배상금이나 보상금을 받으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만 대화에 의지를 보일 것이 아니라 일본 역시 대화 창구로 나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도 강하게 나왔다. 강 전 의원은 “일본이 대화를 좀 해줘야 한다”며 “그동안은 (일본이) 문을 걸어잠그고 모든 것을 중단시켜서 외교 문제를 얘기할 겨를도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윤경환·박우인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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