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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놓친 인물 이덕리, 그가 쓴 조선 최초의 '국방백서' 내용은?

[책꽂이-상두지]

■이덕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유배 중 충심으로 쓰인 국방백서

무기·병법·전술·군비까지 총망라

정약용이 세 차례나 인용하면서

220년 간 원작자로 잘못 알려져

상두지가 처음 실린 정주응의 미산총서 8권 중에 6권의 부제형태로 상두지가 쓰여 있다.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시기를 이끈 조선 제22대왕 정조는 문예뿐만 아니라 국방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외세 침입을 막고 강력한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병법과 무예를 익혔다. 평소 병학(兵學)에도 높은 관심을 보인 정조는 ‘무예도보통지’ ‘군려대성’ 같은 군사용 무예 교본 편찬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군사서적 ‘상두지(桑土志)’ 역시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책은 당시 민간에서 저술된 유일무이한 군사서적으로 군비 재원 마련부터 병력 수급, 방어시설 구축, 군사 전략·전술, 무기 제조 및 사용법까지 국방 관련 제도와 방책을 총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 연구자에 의해 정약용의 저서로만 알려진 상두지의 원작자가 이덕리(李德履·1725~1797)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덕리는 정조 즉위 직후 자신의 형 이덕사가 사도세자 복권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유배지로 보내져 생을 마감한 비운의 인물이다. 상두지는 그가 유배지에서 마지막으로 저술한 책이었다. 대역죄인이라는 신분을 고려해 자신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감췄고, 사후 정약용에게 전해지면서 세상에 이덕리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알렸지만 동시에 정약용의 저작으로 220년 넘게 잘못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신간 ‘상두지’는 이덕리라는 인물을 처음 발견한 고전학자 정민 한양대 교수가 완역한 조선 최초의 국방백서다. 그동안 정약용의 제자 정주응이 엮은 미산총서(총 8권)의 일부로만 전해 내려오던 것을 별도의 단행본으로 펴냈다. 책은 조선 후기의 지리와 기후, 경제와 군사 정보에 관한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평시와 전시 각각의 방어와 무기 체계를 정밀하게 논하고 있다. 기존의 국방 관련 서적들이 병법서면 병법, 진법서면 진법에 관해서만 기록했다면, 상두지는 한 사람이 전부 집필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묘안을 상세히 다뤘다.

서호이집(西湖二集)》에 실린 만천연분통(滿天煙噴筒, 그림 왼쪽)과 비천분통(飛天噴筒, 그림 오른쪽) 도설./자료제공=휴머니스트


이덕리가 국방 개혁의 시작점으로 꼽은 것은 바로 둔전(屯田)이었다. 둔전은 군량미를 충당하기 위해 군사요지를 개간한 농지다. 국가 재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자신이 구상한 국방시스템을 구현하려면 현지에서의 군량 조달뿐 아니라 방어시설과 각종 무기 제작 및 유지 비용을 감당할 둔전이 필요하다고 본 이덕리는 한나라부터 명나라 말기까지 역대 중국 왕조에서 시행한 둔전제도의 연원과 운영 방식, 장·단점을 세세히 분석해 당시에 적합한 둔전제를 제시했다.

상두지에 실린 포루의 외형을 유추해볼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권수에 실린 포루외도(砲樓外圖)./사진제공=휴머니스트




공격을 위한 무기와 전술도 구체적으로 다뤘다. 전차와 화기, 냉병기 등 철기를 주력으로 하는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다양한 대비책을 상황별로 제안했는데, 특히 지형적 특성을 반영한 궤도형 전차의 존재나 압록강 빙판에서 벌어질 전투에 대비한 빙차(氷車)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언급됐다.

그가 제안한 국방전략 구상은 당시로 보면 엄청난 재원을 투입해야만 가능했다. 이는 조선의 형편상 무리가 있어 자칫 탁상공론에 그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저자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덕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제적인 차(茶) 무역을 제안하고 있다. ‘차밭이 많은 영남과 호남에서 한 말의 쌀을 1근의 차로 대납하도록 한다면 수십만 근을 힘들이지 않고 모을 수 있고, 배로 운반해 판매하면 한두 해 안으로 45개의 둔전을 설치할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군사들의 급료와 거처 지원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그의 이 같은 구상은 안타깝게도 당대에서는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한 채 잊혀갔다. 이덕리 사후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용은 우연한 기회에 상두지를 손에 넣어 제자 이정과 함께 상두지의 초고를 정리(1812년 이전으로 추정)해 기록으로 남겼다. 정약용은 이후 국방 관련된 저서 ‘아방비어고(我邦備禦考)’를 정리하면서 국내 저서로는 유일하게 ‘상두지’를 인용했다. 이 때문에 상두지는 지금까지 정약용의 저서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역자인 정 교수는 “책은 변방의 이민족이나 농민군과의 공성전에서 시도됐던 각종 전법과 무기 생산을 위한 제철, 제련 관련 내용까지 다루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상두지는 전근대 시기 국방 시스템의 총체적 혁신안을 내보인 희소한 저술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평했다. 1만8,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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