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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보이지 않는 무정부주의자들을 향한 트럼프의 공격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코로나 확산에 경제 상황도 악화

대선 2개월 남은 트럼프 재선 험로

보이지 않는 무정부주의자들 만들어

공격하는 전략이 남은 유일한 패

폴 크루그먼




지난 목요일 아침, 필자는 맨해튼 거리를 가로질러 한참을 걷다가 되돌아왔다. 화창한 날이었고 도시는 활기로 넘쳤다. 거의 모든 점포가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에도 길거리 테이블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으며 센트럴파크는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로 붐볐다.

아마도 이 모든 광경은 필자의 상상일 것이다. 뉴욕은 폭력과 파괴로 가득 찬 무정부 상태의 난장판이라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대선을 2개월 앞두고 트럼프는 자신의 치적이나 조 바이든에 대한 공격만으로는 재선 고지를 밟을 수 없다는 확실한 결론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비밀리에 민주당을 지배하며 미국의 도시들을 쑥밭으로 만드는 무정부주의자들을 자신이 맞서 싸울 적으로 제시했다.

트럼프는 ‘어두운 그림자’ 안에 몸을 숨긴 채 바이든을 조종하는 수상한 무리와 공화당 지지자들을 위협하는 검은 옷의 괴한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요 정당의 정치인이 이런 음모론을 주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정부주의자들은 현재 트럼프가 쥐고 있는 마지막 패다. 한 달 전 트럼프 대선 캠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협조를 거부했다.

팬데믹 초기에는 코로나19를 대도시와 민주당 강세주의 문제로 묘사하는 것이 가능했다. 공화당 강세주인 ‘레드 스테이트’ 유권자들은 코로나19 위협을 가볍게 여겼다. 그들이 아는 사람 중 코로나19 환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대유행으로 공화당 텃밭인 선벨트 지역에 피해가 집중됐다. 이 지역의 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술집 영업 중지, 대형 집회 금지 등 트럼프가 원하지 않는 조치들을 잇달아 취하면서 2차 대유행의 물결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중서부지역에서 바이러스가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투표일 전까지 거주지역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미국인이 주변에서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를 보게 될 것이고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는 트럼프의 거듭된 약속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경제 상황도 마찬가지다.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소비자신뢰지수 역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조사한 기업들의 경제진단 또한 부정적이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트럼프 입장에서 보면 잘 나가는 경제에 편승해 재선 고지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로서는 보이지 않는 무정부주의자들을 만들어 자신의 적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집회와 관련해 일부 약탈과 방화, 사유재산 훼손 등의 불상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산 피해는 과거 도시지역에서 발생했던 폭동에 비하면 미미하다.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포틀랜드는 화염에 휩싸이지 않았고 폭력사건 중 상당수는 좌익이 아니라 우파에 속한 극렬분자들이 저지른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트럼프 자신의 주장을 제외하면 무정부 상태와 폭력의 물결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유권자들이 대통령의 끔찍한 환상에 놀아날까.

실제로 그럴지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건 범죄의 현실과 대중의 인식 사이에는 늘 현저한 괴리가 존재한다. 퓨리서치가 지적하듯 1993년에서 2018년 사이 미국의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크게 감소했다. 이 기간 뉴욕시의 살인 사건은 무려 80% 격감했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들은 범죄 발생 건수가 늘고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보였다. 게다가 여행과 관광이 위축되면서 다른 지역의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줄었다. 이런 요인들로 트럼프는 미국의 대도시들이 지옥도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억지를 그럭저럭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거짓말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높일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 재임 기간 중 미국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러니 여러분은 미국을 지옥불에서 건져내기 위해 다시 나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억지는 그리 좋은 선거구호가 아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이 불러일으키는 공포 역시 그의 친구가 아니다. 퀴니피악대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중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더 커질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트럼프는 계속 보이지 않은 무정부주의자 타령을 이어갈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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