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전압별 요금 체계로 전환하는 전기 요금 체계 개편을 공식화한 것은 원가를 반영하지 않은 현 요금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원가가 반영되지 않아 ‘두부(전력)’가 ‘콩(연료)’보다 싼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정부의 탈원전, 탈석탄 정책 등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전기 생산원가가 계속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의 전력 시장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원자력발전을 통한 평균 전력 구입 단가는 58원 40전으로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 중 가장 낮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평균 구입비는 93원 73전으로 원전보다 35원 30전이나 많다. 석탄 발전 역시 87원 47전으로 신재생에너지보다 저렴하다.다만 한전은 실질적인 요금 인상 가능성이 높은 전압별 요금 체계 도입 시점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 이후인 오는 2025년으로 정해 숙원 사업인 요금 체계 개편과 ‘정치적 부담’ 사이에서 타협안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전이 전압별 요금 체계 도입을 공식화한 것은 현재 전기 요금 책정 과정에 반(反)시장적인 요인이 지나치게 작용한다는 판단에서다. 요금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서민 물가 관리나 산업 지원, 농어민 보호 등 정책적 고려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압별 요금 체계가 도입되면 지난 1973년 이전 요금 체계로 돌아가는 셈이다. 용도별 요금 체계는 제1차 석유파동 이후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고 저소득층 요금 부담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압이 저압이고 발전소에서 먼 지역에서 소비할 경우 전력 공급 비용이 높지만 이 비용이 요금에 고스란히 부담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기준 용도별 판매 단가를 보면 킬로와트시(kwh)당 주택용 104원 95전, 일반용 130원 33전, 교육용 103원 85전, 산업용 106원 56전, 농사용 47원 74전 등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한전은 용도별 요금 체계가 굳어지면서 요금과 공급 비용의 간극이 지나치게 커졌다고 보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농사용 전기 요금의 원가 회수율은 37.1%로 추정된다. 주택용과 교육용의 회수율 역시 각각 74.6%, 84.2%로 원가에 한참 못 미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가 이상을 내는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 요금으로 곳간을 메우고 있다. 동일한 곳에 동일한 전력을 공급하면서도 원가가 배 이상 차이 나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 안정, 신사업 활성화, 사회적 약자 지원 등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해 정치가 과도하게 전기 요금 체계에 개입해 (전기 요금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투명성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전의 계획대로 요금제가 개편되면 전력 사용 규모가 적고 발전소와의 거리가 멀수록 요금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적으로 고압 부문은 전력수송 시 송전망을 중심으로 전력을 운송하기 때문에 배전망까지 사용하는 저압 부문에 비해 원가가 저렴하다. 또 고압 전력은 대부분 산업용으로 주택용이나 일반용에 비해 부하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 공급 비용이 저렴하다. 이에 상대적으로 저압인 주택용과 농업용, 도심보다는 지방의 전기 요금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은 이외에 2023년 산업용의 시간대별 요금제를 개편하기로 했다. 현재는 산업용 전기 요금에는 경부하, 중간 부하, 최대 부하 등 시간대별로 차등 요금제가 적용되는데 전력을 많이 쓰는 낮 시간대에 높은 요금이, 적게 쓰는 심야 시간대에 낮은 요금이 부과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경부하 시간대의 요금 수준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낮다 보니 본래 취지와 달리 전력 과소비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계획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한전은 경부하 요금제를 우선 손볼 것으로 보인다.
요금제 개편이 완료되면 가정·농가뿐 아니라 산업 부문에서도 전기 요금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이 5년 내 현행 요금 체계를 탈바꿈하겠다고 결정했지만 가뜩이나 탈원전 정책의 신뢰성에 금이 가고 있는 정권 입장에서 서민 경제에 민감한 요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기 요금 체계를 개편하려면 한전이 개편안을 마련한 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치고 다시 전기위원회 심의를 받은 뒤 최종적으로 산업부가 인가해야 한다. 최종 결정 권한은 정부가 쥐고 있는 셈이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한전이 전기료 인상이 예상되는 제도 개편은 모두 다음 정권 때로 미뤄뒀다”며 “합리적으로 산정돼야 할 전기 요금이 정권 입맛에 좌우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우보·조양준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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