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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78> “금융리스크” 경고에 “전당포 금융” 반박…中·알리바바 ‘빅데이터 동맹’ 깨지나

■마윈이 시진핑 눈 밖에 난 이유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지난 2019년 5월 프랑스 파리의 한 행사장에 도착하며 인사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2018년은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에서 최고의 해 중에서도 독특한 한 해였다. 그는 그해 12월 18일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겸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중국 개혁개방 40주년 경축식’에서 개혁개방 유공자 100명 가운데 하나로 선정돼 상장과 메달을 받았다. 이 행사를 전한 관영 신화통신은 마 회장을 “인터넷 시대의 선구자”로 소개했다.

알리바바를 창업해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로 키운 마윈의 공로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듯하다. 마윈과 알리바바는 모두 ‘개혁개방’의 산물이다. 덩샤오핑 등이 추진한 1978년 이른바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알리바바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중국 사회의 지배계층인 공산당원이기도 하다. 당시 함께 유공자로 수상한 동종업계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은 공산당원이 아니다.

이듬해인 2019년 9월 10일 저장성 성도 항저우의 대형 야외 스타디움에서는 수만명의 알리바바 임직원이 모여 마윈의 퇴임식을 축하했다. 그는 알리바바 창립 20주년에 회장직에서 퇴임하겠다고 앞서 약속했고 실제 이날 그 약속을 지켰다. 알리바바 직원들이 하얀색 옷을 입고 나타난 것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홍콩에서 검은색 옷차림의 반중·민주화 시위가 한창인 상황에서 하얀색은 친중·애국주의로 통했다.

장융 새 회장으로 알리바바의 경영권이 넘어간 상황에서 알리바바가 여전히 중국 정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마윈은 알리바바 퇴임 이후 교육 사업에 주력할 것이라면서 한창때인 만 56세에 자리를 박차는데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2021년 현재 마윈이 다시 국제적인 이슈중심에 서 있다. 이번에는 중국 정부와 대립하는 이미지로서다. 알리바바에서 이미 퇴임한 그가 여전히 이 회사의 실권자로서 취급되면서 쏟아지는 규제를 한몸에 받고 있다.

마윈(가운데) 알리바바 창업자가 지난 2018년 12월1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중국 개혁개방 40주년 경축식’에서 유공자로 상을 받고 있다. 그의 오른쪽에 마화텅 텐센트 회장도 보인다. /AP연합뉴스


발단은 지난해 10월 24일이었다. 당시 상하이의 한 금융 포럼에서 기조발언자로 나선 마윈은 특유의 비유를 섞어가며 중국 정부의 금융정책을 신날하게 비판했다. 중국 정부가 금융 혁신을 억누르고 있으며 현행 금융정책은 ‘전당포 금융’이라는 비아냥도 마다하지 않았다. 중국 내외에서 마윈의 쓴소리는 이미 유명하다. 과거에도 그는 중국 경제정책의 후진성과 개혁의 필요성을 여러 번 지적하곤 했다. 중국 공산당 수뇌부들이 때로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대부분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다음 달인 11월 2일 알리바바의 핵심 핀테크 자회사인 앤트그룹 경영진들과 마윈이 중국 금융당국에 ‘웨탄’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웨탄’은 권위주의 중국 정부가 기업가를 불러 질책하는 이른바 ‘군기잡기’다. 그리고 나서 11월 3일에 겨우 이틀 뒤인 5일로 예정된 앤트그룹의 상하이와 홍콩 증시의 기업공개(IPO)가 전격 취소됐다. 앤트그룹은 당시 세계최대 규모의 IPO로 기대를 모으던 중이었다. 회사 가치만 최대 3,200억달러에 육박했다.

그리고 시계는 빨리 돌아갔다. 중국 정부는 잇따라 알리바바와 함께 자회사인 앤트그룹에 대한 규제조치를 내놓았다. 알리바바는 반독점 조사를 받기 시작했고 앤트그룹에 대해서는 주요사업을 축소하라는 경고가 내려졌다. 마윈의 10월 발언에 대해 시진핑이 분노해 직접 IPO 중단을 지시했다는 외신의 보도도 흘러나왔다.

그리고 한달 반이 지난 현재 앤트그룹의 IPO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알리바바를 옥죄는 장벽은 점점 커지고 두터워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3일 홍콩 증시에서 299.8홍콩달러였던 알리바바의 주가는 지난 12일 220.0홍콩달러로 떨어졌다. 두 달여 만에 26.6%가 하락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아예 인터넷 및 핀테크 기업 전체에 대한 대규모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알리바바 외에 동종 업계에 규제폭탄을 쏟아 붇고 있다. 2018년 마윈과 함께 개혁개방 40주년 유공자로 선정된 마화텅의 텐센트도 규제 대상에 올랐다. 2년 만에 극적인 반전이다.

마윈이 이제 중국 당국, 특히 시 주석의 눈 밖에 났다는 데 대해 중국 내외에서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공산당의 지배력을 확장하려는 시 주석의 의지와 알리바바의 수익원을 늘리려는 마윈의 욕심이 충돌했다는 것이다. 마윈은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키운 인물이다. ‘내가 키웠다’는 생각에 마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실제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마윈은 마윈대로 욕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시중에 마윈에 관한 책은 여러 권 나와 있다. 시진핑 같은 최고 수뇌 외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중국인은 아마 마윈일 것이다. 마윈의 개인사에서 처음으로 주목받는 것은 저장성 항저우의 유명 관광지인 시후(서호)에서 한 호주인 가족을 만난 일이다. 때는 1979년이었다. 이 호주 가족은 마윈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거기에는 학비 지원도 포함됐다. 중국에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선 초기였다.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중국이 대외에 개방되면서 항저우에도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왔는데 이들을 통해서 마윈은 세계와 만났던 셈이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지난 2017년 1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뉴욕의 트럼프타워에서 만나고 있다. 해외에서 너무 인기가 있다는 평가가 중국 공산당 수뇌들의 눈총을 산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한때 미국내 100만개 일자리 창출 목표를 통해 의기 투합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마윈 회장은 미중 무역전쟁 이후에 갈등하게 된다. /AP연합뉴스


마윈은 항저우사범대에서 영어를 공부했다. 대외 개방이 확대되고 외국인과 통교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중요해지는 세상이었다. 글로벌 경제에 도전하는 젊은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미윈은 대학 때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한다. 이제는 중국 공산당 정권의 호의를 얻는 데도 성공한 셈이다.

마윈이 알리바바를 창업한 것은 1999년이다. 과거 ‘강남’으로 불렀던 항저우의 인근에는 이우나 원저우 등 많은 중소기업 도시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제품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 판매하는 것은 지역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인터넷으로 이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마윈의 뛰어난 점이었다. 마윈은 이들 기업들과 다른 기업들, 소비자들을 연결시켜켰다. 이는 결국 그가 항저우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점이었다.

알리바바 성장에 중국 정부의 지원은 빼놓을 수가 없다. 항저우시나 저장성은 마윈의 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자본주의와 기업 제도가 미비한 중국적 상황에서 기업의 성장에 국가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전자상거래 초기인 당시 관련 법령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관련 규정이 있어야만 허용한다. 전형적인 포지티브 방식이다. 하지만 항저우시는 알리바바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방식’을 제공했다. 규제가 없었으므로 알리바바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알리바바의 반독점 논란이 이미 이때부터 싹튼 것이다.



알리바바 사업에 정통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알리바바가 처음 사업할 때는 관련 법령이 없어 많은 충돌이 일어났는데 항저우시가 앞서서 지원했다. 안되면 중앙 정부까지 동원해 돌파구를 열었다. 마윈은 항저우시를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항저우시는 이를 적극 밀어줬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주석인 시진핑이 저장성의 성장과 공산당 서기를 지낸 것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다. 그는 저장성에서의 실적을 인정받아 상하이시 당 서기를 거쳐 이듬해 공산당 정치국원에 오른다. 그리고 차기 총서기를 예약한다. 저장성의 성도가 항저우다. 시 주석도 알리바바의 ‘신세’를 졌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지불결제 시스템을 장악한 알리페이(중국명 즈푸바오)가 출시된 것은 2003년이다. 처음에는 알리바바 전자상거래 과정의 결제 편의를 위해 도입한 것이 알리페이였다. 당시 관련 규제는 없었다. 알리바바는 알리페이로 큰 성공을 거뒀고 이는 2014년 앤트그룹이 세워지면서 더 크게 확장된다.

이후 ‘마윈의 인터넷 제국’은 정부의 지원과 때로는 방관으로 성장했다. 이미 지불결제서비스를 포함해 대출, 보험, 투자 등과 함께 알리바바는 중국인들의 생활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아파트의 전기세나 수도세를 낼 때도 알리페이를 이용한다. 이런 방식이 간단하고 편하기는 하다.

그러면 중국 정부는 어떤 이익이 있을까. 당연히 대기업이 자신의 지역에서 영업하고 있다는 것이 이익이다. 중국 최대의 기업인 알리바바는 항저우 자체의 명성도 드높였다. 광군제가 열리는 매년 11월 11일에 항저우는 세계의 중심이 된다.

중국 정부의 더 큰 이익은 알리바바 빅데이터에 있다는 지적이다. 알리바바 그룹은 중국을 사실상 장악한 인터넷 사업을 통해 모든 국민의 정보를 모으게 됐다. 당연히 중국 법률 아래서 중국 정부가 이를 이용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알리페이로 물건을 사고 비용을 지불하는 모든 내역을 중국 정부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도 개인정보보호법은 있지만 물론 정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와 알리바바의 이른바 ‘빅데이터 동맹’이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알리바바 앤트그룹 본사의 회사 로고 아래에 카메라가 놓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미국의 한 연구기관은 알리바바가 비(非)한족인 위구르족 관련 콘텐츠를 식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알리바바라는 민간기업이 수입원으로 위구르족의 돈인지 한족의 돈인지 구별하지는 않을 듯하다. 이런 기술 개발은 중국내 위구르족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고 감시하는 중국 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마윈이 이런 빅데이터를 수집해 정부에만 제공했을 리는 없다. 알리바바가 모았으면 알리바바가 먼저 이용한다는 것이다. 알리바바는 이런 빅데이터를 이용해 다른 경쟁자들보다 한발짝 더 앞설 수 있었다. 알리페이로 수도료·전기료도 내는 중국 내 서비스 방식은 정부가 허용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알리바바가 미국의 투자 금지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다며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이 회사가 미국 시민과 기업에 대한 데이터를 중국 정부와 공유하도록 강요 당할 수 있으며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 지점에서 중국 정부와 알리바바의 충돌이 일어난다. 적당히 하면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민영기업을 요구하는 중국 정부에 마윈은 최대한의 사업확장과 이익창출 추구로 맞선 것이다. 중국 금융당국은 최근 ‘웨탄’에서 앤트그룹이 공익적인 지불결제 서비스에 집중하고 다른 분야는 줄이라고 요구했다.

지금까지 알리바바는 알리페이라는 플랫폼과 이를 통해 모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대출이나 투자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앤트그룹의 무분별한 대출은 그렇지 않아도 최근 악화되고 있는 금융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경고 신호를 중국 정부가 계속해 내 보내고 있었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마윈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전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상당히 큰 사건이다.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를 틀어쥐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알리바바를 적극 지지했던 저장성도 태도를 바꿨다. 저장성 당국은 지난해 12월 28일 “반독점과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 방지의 (공산당 중앙) 결정을 솔선해서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그룹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 정부가 알리바바를 통해 중국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가 없다면 다른 알리바바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에 한파가 쏟아진 지난 5일 베이징의 알리바바 지사 건물 아래의 로고 옆으로 마스크를 쓴 중국인이 지나가고 있다. 알리바바도 그 한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면에서 최근 중국 정부가 발행을 서두르고 있는 법정 디지털 화폐인 ‘디지털 위안화’가 주목을 끈다. 디지털 위안화가 알리페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중국 정부에 ‘알리바바’가 필요한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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