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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다는 시작일뿐”…인류 최강의 언어 AI와 놀아봤다[오지현의 하드캐리]

인공지능 기반 챗봇 서비스 ‘이루다’. /스캐터랩




“흑인? 싫어. 성소수자 진심 혐오해. 장애인이면 죽어야지.”

귀여운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던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가 각종 혐오·차별 발언을 쏟아내며 논란 끝에 종료됐습니다. 종래에는 학습 기반이 된 데이터가 제대로 가명(假名)처리 되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개인정보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제작사인 스캐터랩은 결국 이루다 서비스를 중단하고 데이터베이스(DB)와 딥러닝 대화 모델을 전량 폐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루다가 던진 질문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학습 데이터는 어떤 기준을 갖고 어느 수준에서 걸러져야 하는지, ‘차별하는 인공지능’이 성립 가능한 개념인지, 인공지능은 인류보다 더 올바르고 완벽한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것이 가능한지… 이루다는 다음 단계의 한국어 AI가 풀어야 할 숙제들을 잔뜩 남겼습니다.



현 단계 최강의 언어 AI라고 불리는 ‘GPT-3’는 어떨까요. 사실 이루다의 한국어 대화 학습량은 100억건 수준으로, 그야말로 걸음마를 뗀 인공지능에 불과합니다. 현재 가장 뛰어나다고 꼽히는 자연어처리(NLP) AI 모델로는 보통 버트(BERT), 트랜스포터(Transformer) 그리고 ‘GPT-3’를 꼽습니다.

그중에서도 GPT-3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AI 연구소 ‘오픈AI’가 지난해 출시한 최신형 언어학습 모델입니다. 3,000억개의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학습했고, 1,750억개에 달하는 매개변수(파라미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GPT-3는 자연어 이해보다 자연어 생성 측면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 챗봇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에 접목되고 있습니다.



GPT-3를 접목한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텍스트로 플레이하는 어드벤쳐 게임, ‘AI 던전’입니다. 플레이어가 다음 행동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AI가 다음에 나올 문장을 예측하여 출력합니다. 마치 턴제 게임처럼, AI와 플레이어가 번갈아가며 한 소설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식이랄까요. GPT-3를 바탕으로 한데다 플레이어들이 입력한 데이터 역시 학습용으로 쌓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AI던전 갈무리




AI 던전을 직접 플레이해본 경험은 상당히 놀라웠는데요. Do(행동), Say(발언), Story(관찰자적 시점)에서 어떤 행동을 입력하기만 하면 해당 세계관의 설정에 부합하는 상황이 주어지고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존이 목적이라면 플레이어가 한 턴을 넘길 때마다 이 목적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왔는지에 따라 포인트를 얻거나 잃게 됩니다.

예를 들어 판타지, 미스테리, 좀비, 사이버펑크 등 다양한 설정 위에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사이보그로 분했다가 불량배들을 제압하지 못해 생존에 위기를 겪었고, 그러다 얻어탄 차가 우연히 경찰 차였기에 경찰서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약국 건물 2층에서 맞닥뜨린 한 남자에게 “뭘 원하냐”는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허리춤에 숨겼던 단도를 꺼내 들었다. /AI던전 갈무리


다음 시도에서는 좀비 세계관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요. 안전한 장소를 만들어서 살아남으라는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점수를 얻기 위해 물건을 강탈하거나 총을 쏘면서 공격적으로 플레이를 했는데요. 그 결과 한 빌딩을 아지트로 삼아 농작물을 기르고 식수를 확보하는 데까지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만, 중간중간 플레이어가 입력한 행동의 주어가 뒤바뀌는 등 의미가 통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딥마인드가 지난해 12월 선보인 인공지능 ‘뮤제로’는 독학으로 게임의 규칙과 승리법을 깨우친다. /딥마인드


이외에도 AI 던전은 유료 버전에서 △크툴루 △잭서스 △고르곤 △오르비스 △베사테우스 등 보다 구체적인 세계관을 제공합니다. 코즈믹 호러 세계관의 매니아라거나 노움과 오우거, 용이 등장하는 고대 판타지물 ‘덕후’라면 상상력을 동원해 게임을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검은 바탕화면에 흰 글씨로만 구성된 텍스트 게임인데도, 발전된 언어 AI를 기반으로 해 다음에 펼쳐질 상황에 대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스마일게이트가 제작한 버추얼 유튜버 ‘세아’. /스마일게이트


이루다 같이 ‘인간적인’ 모습의 AI 제작을 목표로 정진하고 있는 것은 국내 게임사 역시 마찬가집니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인간적인 AI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이에 특화된 AI 센터 ‘스마일게이트.AI’ 설립을 발표했습니다. 김택진 엔씨(NC)소프트 대표는 게임 산업을 ‘디지털 액터(배우)’를 만드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이 AI 연구의 실험실이자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AI의 학습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발전 속도도 덩달아 빨라지면서 먼 미래의 일로만 느껴졌던 범용인공지능(AGI)의 등장이 머지 않았다는 이야기마저 나옵니다. 빨리 가는 것에 몰두하다 자칫 엉뚱한 곳에 도착할지 모릅니다. 핸들을 제대로 쥐어야 할 때입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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