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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소백산 자락서 만난 '도연명의 무릉도원'

■나무로 읽는 역사이야기- 경북 영주 주송골 소나무 숲

강판권 계명대 교수·사학

소백의 정기 한껏 받는 '주송골'

300여 그루 소나무 향기 가득

길손 반겨주는 정자·느티나무

지친 이들 쉴 수 있도록 품어줘

성황당은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사람들 염원 하늘로 전하는 듯

주송골 입구 소나무 숲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봉현면 대촌2리 주송골은 ‘솔향기 마을’로 불린다. 지난 2006년 녹색 농촌 체험 마을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송골 소나무 숲은 2009년 산림청의 전통 마을숲 조성 사업 중 경북 대표 마을숲으로 선정됐다. 주송골 소나무는 바람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다. 뒤는 산이고 앞이 열렸으니 바람이 앞에서 불어올 수밖에 없다.

주송골의 터전인 소백산은 영남을 대표하는 산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영남 사람들은 소백산을 귀하게 여겼다. 퇴계 이황(李滉)은 풍기 군수로 재임하던 1549년(명종 4)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소백산을 유람한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남겼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백두산맥과 동방의 지리를 논하면서 퇴계와 남명 조식을 소백산과 두류산(지리산)에 비유하고 소백산을 인(仁), 두류산을 의(義)에 빗댔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주송골은 소백산의 정기를 한껏 받고 있는 마을이다. 나는 난생 처음 주송골을 찾았다. 주송골은 소백산 자락에 막힌 그야말로 두메산골이다. 마침 마을을 찾아가니 한여름 구름이 마을 위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소나무 숲이 울창해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주송골의 소나무는 300여 그루다. 주송골의 소나무가 지금까지 보존돼온 것은 32가구 주민의 노력 덕분이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날 보호수 소나무에 제사를 지낸다.

느티나무


솔향기로 가득한 주송골은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마을이다. 중국 동진시대 도연명(陶淵明)이 꿈꾼 무릉도원도 주송골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 입구 소나무 숲에서 15도 정도의 경사를 따라 마을로 올라가면 정자가 길손을 맞는다. 정자는 두 개다. 하나는 나무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느티나무다. 우리나라에서 느티나무를 ‘정자나무’로 부르는 것은 느티나무 그 자체가 발길을 멈추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는 가지를 옆으로 뻗기 때문에 지친 사람들이 쉬는 데 안성맞춤이다. 특히 느티나무는 아주 깔끔한 성품이라 사계절 언제나 사람들을 품어주는 인자한 존재다.

성황당과 소나무




느티나무 건너편은 주송골의 성소다. 이곳에는 서낭신을 모시는 성황당이 있고 제사를 지내는 소나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황당으로 가는 중간에 작은 계곡이 있고 계곡에는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다. 성황당 옆의 소나무 세 그루는 모두 구룡목(龜龍木), 즉 나무줄기는 거북 등을 닮고 가지는 승천하는 용을 닮았다. 소나무의 이런 모습은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나곡리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제289호처럼 몇백 년의 세월이 흘러야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성황당의 소나무들은 다리 건너편 돌 틈에 사는 하얀 옥잠화 때문에 좀처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없다. 옥잠화는 꽃이 비녀를 닮아 붙인 이름이지만 배고픈 나에게는 티스푼을 닮아 보여 꽃으로 계곡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야 갈 수 있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온 길을 돌아보니 느티나무가 팔을 뻗어 나를 안는다. 나는 한참 동안 느티나무에 안겨 쉬었다가 성황당 소나무 곁으로 갔다.

주송골에 성황당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 마을 사람들이 자연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서낭신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종묘·사직과 함께 민간의 중요한 신앙이었다. 그래서 성황당은 국가 차원에서도 중시했다. 성황당은 주로 천신과 산신을 모시는 곳이다. 단군이 산신으로 변해 1,980세까지 산 데서 알 수 있듯이 산신은 우리 민족에게 아주 중요한 신앙이었다. 주송골의 성황당과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찰 산신각의 산신도에 등장하는 산신과 소나무를 무척 닮았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종종 성황당을 만나지만 나는 어릴 적 성황당이 무서웠다. 그러나 성황당의 존재를 알고 난 후 성황당을 만나면 무척 평화롭다. 성황당이 나무를 지켜주는 신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주송골 성황당 주변에 살고 있는 소나무 중에서도 성황당 뒤편의 소나무만 줄기가 두 갈래다. 두 줄기의 모습은 마치 양팔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마을과 소백산을 향했다. 소나무 줄기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받아들이는 통로다. 특히 줄기 끝자락이 하늘로 올라가는 용을 닮은 가지는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하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성황당의 위치는 나무의 가치를 생각하면 분명하다. 이제 성황당도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있다고 해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곧 인간이 나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다. 이런 점에서 주송골 성황당의 가치는 한층 높이 평가해야 한다. 서낭신과 소나무의 관계는 주송골 마을 사람들의 미래이자 우리 모두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강판권 계명대 교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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