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은 기념행사를 여는 대신 충남 당진 소재 스마트팜 ‘위풍당당 농장’으로 달려갔다. 이 농장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청년 농부사관학교 4기 졸업생 김수성 씨가 스마트팜 기술로 오이를 재배하는 곳이다. 이 회장은 영농 경험이 부족한 청년 농업인들이 스마트팜을 발판 삼아 농촌에 유입될 수 있다고 보고 현장에서 지속 가능한 농촌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 회장은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연세가 있는 분들은 스마트팜의 편리함을 알더라도 몇억 원씩 새로 투자하기에는 부담을 느낀다”며 “젊은 사람들이 귀농해 스마트팜 기술로 농사를 지으면 농촌에 활력이 생기고 농촌 환경도 변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취임 직후부터 ‘디지털화’를 강조한 것도 결국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농업 분야 생산·유통의 디지털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농촌의 일손 부족이 일상화되며 농업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을 받는데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이 급속히 이뤄졌다. 이 회장은 “중국에서는 농업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전역에 스마트팜 시설이 퍼져 있다고 한다”면서 “(농업 선진국을) 우리가 빨리 따라가고 더 나아가 앞서려면 한가할 수가 없으며 농민들이 빨리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한 정부 지원도 필수적이다. 이 회장은 “농업 인구가 줄고 먹거리를 수입에만 의존하게 되면 우리 목숨을 외국에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식량 자급률이 30%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을 지원하는 데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담=김현수 경제부장 hskim@sedaily.com
이 회장이 특히 공을 들이는 분야 중 하나는 청년 농업인 육성이다. 통계청 농림어업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농업인 비중은 62.9%에 달하는 반면 20~30대 농업인 비중은 10.3%에 불과했다(2018년 말 기준). 농협은 청년 농업인 육성이 농촌 고령화의 해법일 뿐 아니라 청년 일자리 부족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라는 데 주목했다. 이에 농협은 귀농을 고려하는 예비 청년 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해 ‘청년 농부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개교 첫 해인 지난 2018년 22명이었던 수료 인원은 1년 만에 150명으로 급증했다. 농부사관학교 교육을 위해 농협이 지원하는 예산은 입학생 1인당 1,000만 원에 달한다.
지난해 농부사관학교에 들어간 이들은 작가, 포토그래퍼, 일반 직장인 등으로 다양했다. 이 회장은 “농부사관학교 졸업생이 실제로 귀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농지를 사거나 임대하려는 분들이 많을 테니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협 신용보증기금은 올해 ‘청장년 귀농업 창업 신용 보증 사업’을 통해 2,0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창업농지원센터를 열어 기술 교육, 종합 컨설팅, 온오프라인 판로 지원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했다.
청년 농업인 육성과 맞닿아 있는 것이 농업의 스마트화다. 이 회장은 지난해 충남 보령의 스마트팜 장비 제작사를 방문한 경험을 떠올리며 “앉아서 파종하고 앉아서 수확할 수 있어 노약자나 장애인까지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겠더라”고 소개했다. 이어 “기계가 회전해 작물의 일조량이 똑같다는 장점도 있었다”면서 “제작사의 설명대로 5년간 13만 개의 고추를 수확할 수 있다면 고품질의 국산 고춧가루가 중국산 고춧가루를 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농협은 경기 고양시 농협대학교에 하우스 시설을 여럿 만들고 스마트팜의 생산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 회장은 “어떤 스마트팜 시설이 더 좋은 품질로 더 많은 생산량을 낼 수 있는지 비교하고 있다”며 “나중에는 고추·딸기·오이·토마토 등도 재배하고 귀농을 고려하는 분들, 청년 농부사관학교 학생들이 견학하도록 하면 귀농에 대한 결심이 확고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장이 중점 추진하는 또 다른 과제는 ‘유통 혁신’이다. 농협은 지난해를 유통 혁신의 원년으로 삼고 ‘올바른유통위원회’를 출범시키는 한편 온라인 소싱 플랫폼 구축, 온라인 농산물거래소 시범 사업 추진, 반자율주행 이앙기 공급, 도매 조직 통합 등의 성과를 냈다. 올해는 ‘농축산물 유통 혁신 실천의 해’로 유통 대변화를 위한 과제를 본격 이행할 계획이다.
유통 단계를 축소해 중간 마진을 줄이면 농민은 비교적 원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소비자인 국민은 높은 신선도의 농산물을 싸게 먹을 수 있게 된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농협하나로유통과 농협유통 각각의 구매 조직을 경제지주 소속 팀으로 통합해 전국에서 농산물을 구매하도록 했다”며 “‘일물다가(一物多價)’ 전략으로 산지·품위별 공급 상품을 다양화한 결과 농가도 만족하고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 손님도 늘었다고 한다”고 성과를 소개했다.
질 좋은 농산물 확보와 함께 온라인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농협은 지난해 중앙회에 설치한 ‘디지털혁신부’를 올해 ‘디지털혁신실’로 확대 개편하고 ‘2시간 내 싱싱배송’이 가능한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 회장은 “올해 성남에 처음 구축한 디지털풀필먼트센터(DFC) 시범 운영 현장에 가보니 3㎞ 이내 주문은 2시간 내 싱싱배송이 가능했다”며 “현재 1일 150건 수준인 싱싱배송 주문을 오픈 시 500건, 향후 1,000건으로 늘려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싱싱배송 확대를 위해 자체 택배 조직을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면서 “쿠팡의 ‘로켓배송’을 넘어 우리는 ‘광속배송’이라 할 정도로 빠른 배송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냉장·냉동 시설 건립 계획도 밝혔다. 도시농협이 농촌농협과의 공동 투자로 농산물 생산지에 냉장·냉동 시설을 건립하고 성출하기에 농산물을 구매해 보관한 뒤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때 판매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회장은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한 농산물을 매입해 보관했다가 나중에 판매하면 수익이 발생하게 된다”며 “이렇게 경제 사업 수익률을 높이면 예대마진이 줄어 감소한 수익을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농업소득’을 높이는 것이 이 회장의 궁극적인 목표다. 농업소득과 농외소득을 합쳐 계산하는 ‘농가소득’보다는 농산물을 판매해 올리는 농업소득이 많아져야 농촌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장은 “현재 1,000만 원 안팎인 농업소득을 평균 2,000만~3,000만 원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면서 “농산물 생산부터 유통, 소비자 만족도까지 쭉 연계해 혁신하고 농가소득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농촌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들도 컨테이너박스에서 농사를 짓고 이스라엘은 사막에서도 신기술로 농산물을 생산해 수출까지 한다”며 “우리가 지금 농업에 관심을 갖지 않아 농업인구가 줄고 농산물 수입량이 늘어나면 수출국에서 우리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새로운 농법을 도입해 생산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더 과감하게 투자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올해 유통 개혁을 어느 정도 마무리해 ‘이만큼 해낸 것도 힘겨웠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디지털화와 유통 개혁을 임기 내 정착시키는 것이 농민도 좋고 국민도 좋고 농협 구성원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 분야에서도 핀테크·빅테크 업체들이 첨단 기술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만큼 ‘민족은행’이라는 과거의 명분과 영업 행태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어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더 많은 현장을 다니려 한다”며 “현장에서 일선 농민과 조합장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고 이를 사업에 접목해 해결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사진=이호재 기자
◇He is···
△1949년 성남 △2006년 장안대 세무회계 △1998~2008년 낙생농업협동조합 조합장 △2003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이사 △2008~2015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감사위원장 △2020년~ 제24대 농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이호재 기자 s02079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