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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붉은여왕과 호질(虎叱), 그리고 한국 기업

■서정명 산업부장

美·EU·日 등 정부와 기업 합심해 패권전쟁 나서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키우는데

韓 기업은 노조편향·규제 늪에 빠져 허우적

경도된 낡은 이념버리고 정책 궤도수정 나서야

붉은여왕과 호랑이의 질타 새겨들어야 할 때





#1. 붉은 여왕의 손을 잡고 함께 뛰던 앨리스가 아무리 뛰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붉은 여왕에게 묻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한참 동안 빨리 달리면 다른 곳에 도착하는데 왜 제자리죠.”

붉은 여왕이 한심하다는 듯이 답한다. “느림보 나라 같으니라고. 여기서는 같은 자리를 지키려면 계속 달려야 해.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해.” 루이스 캐럴의 유명한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경구(警句) 섞인 한 토막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해 해외 정부와 기업들은 ‘다른 곳’에 먼저 깃발을 꽂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글로벌 경제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내남없이 뛰고 있다. 국부(國富) 창출이 최고의 정의(正義)라고 외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 사슬에 대해 검토를 진행하라고 행정 명령을 내렸다.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배터리가 영향권 안에 있다. 유럽연합(EU)도 반도체 자급자족을 천명했다. 오는 2030년까지 180조 원을 투입해 유럽 내 반도체 글로벌 생산량을 현재의 10%에서 2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며 경제를 지탱하는 반도체 아성이 무너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글로벌 1위 자리를 다투는 배터리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일본 정부와 배터리 기업 30여 곳이 다음 달 협의체를 만들어 ‘한국 타도’에 나선다. 중국은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 중국산 배터리 사용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어 우리 기업의 시장 진입이 원천 봉쇄된 것과 다름없다. 글로벌 경제주체들이 ‘자국 밸류 체인(national value chain)’으로 방향 전환을 하면서 한국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2. 호랑이가 ‘북곽선생’을 꾸짖는다. 북곽선생은 이상적인 성리학 이념을 내세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과부 동리자와 정을 통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인물이다.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중시하는 북학파 박지원이 호랑이 입을 빌려 표리부동한 지배층을 꾸짖는 소설 ‘호질(虎叱)’의 내용이다. 호랑이는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위선자 선비들에게 “다급해지니 낯 간지럽게 아첨하는 걸 어찌 듣겠느냐”며 가까이 오지도 말라고 일갈한다.

의석수 숫자 놀음에 흠뻑 빠져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기업 죽이기’에 한창이다. 노동자(노조)와 기업을 갈라치기 하면서 선거에 도움이 되는 노조 편향적인 정책을 취하는 사이에 기업들은 골병이 들고 있다. 해고 노동자도 노조 활동이 가능하도록 노동조합법을 고쳤고 예방 조치는 소홀히 한 채 내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를 1년 이상 감옥에 가도록 했다.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지배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이 본격 시행되면 우리 기업은 해외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쿠팡이 한국이 아닌 미국에 본사를 두고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마켓컬리 등 여타 신생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노크하는 것은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한국에서 경쟁력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헬리콥터식 재정 풀기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며 낯 간지럽게 떠들어대지만 민간 기업에서 창출하는 ‘진짜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틀린 과거는 반성하면서 시각 교정하면 된다. 경도된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궤도 수정을 하지 않으면 우리 기업은 물론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 과속 최저임금에 자영업자가 울었고 현실을 무시한 부동산 정책에 서민이 울분을 삼켰다. 결기 있게 반기업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투자 감소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국민들이 통탄할 것이다. 붉은 여왕과 호랑이의 꾸짖는 소리가 점점 증폭되고 있다.

/서정명 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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