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책꽂이] 창조의 뇌와 병적인 뇌는 한 끗 차이?

■세계를 창조하는 뇌 뇌를 창조하는 세계

디크 스왑 지음, 열린책들 펴냄

빈센트 반 고흐가 즐겨 사용한 노란색은 그가 자주 마시던 압생트 중독 때문이었다는 등 탁월한 창조력과 정신질환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거론된다. 저자는 창조적인 사람들의 뇌 연결성이 공감각과 창조력의 원천이라는 점, 동시에 이들 중 정신질환 발병 가능성이 높은 사례 등을 진단하며 뇌가 만든 세상과 그 세상의 영향을 받는 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진제공=열린책들




피아노 교습을 받던 빈센트 반 고흐는 항상 음과 색을 연관지어 말하곤 했다. 이 때문에 피아노 선생님은 고흐를 ‘정신병자’로 짐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흐는 ‘미친’ 게 아니었다. 러시아 출신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음악을 들을 때 선과 색을 보았다. 그가 추상미술의 창시자가 된 원동력이 바로 이 ‘공감각’이다. 성장 과정에서 대뇌피질의 연결이 사라지면서 시각,청각,철자 등을 분리해 인식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따금 뇌 구역들 간의 일부 연결이 유지되는 경우 뇌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감각 정보들이 뒤섞이는” 것이라며 ‘공감각’이라 부른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경우 자신의 곡을 특정한 색깔로 연주해야 한다며 악보에 색을 명시했다. ‘요란한 색깔’ 같은 시인의 표현도 공감각적이다. 과학자 중에도 공감각 경험자가 꽤 있다. 왕립네덜란드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장을 지낸 과학자 로베르트 디크라프는 “내가 수학 공식을 생각하면 공식 안의 철자들이 색깔을 띠고 나타난다. x는 베이지색과 분홍색의 중간, a의 색깔은 빨강과 파랑의 중간인데 색이 나타나면 그 철자들을 구분하기가 더 쉬워진다”고 했다.

뇌 속 연결망 뒤섞인 '공감각'
시청각 자극 동시에 인지하며
추상미술·음악 등 걸작 원동력
창조력 커질수록 신경망도 활발
정신건강 위험에 더 노출되기도


노란색을 즐겨 사용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사진출처=반고흐미술관


세계적인 뇌과학자이자 지금은 암스테르담대학 신경생물학과 명예교수인 디크 스왑은 신간 ‘세계를 창조하는 뇌 뇌를 창조하는 세계’를 통해 걸작을 만든 거장들의 창조력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그는 뇌과학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뇌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활동한다”는 점을 책의 주제로 설정했다. 저자는 “우리 인간은 외부 세계에서 우리 내부로 들어오거나 뇌에서 솟아오르는 엄청난 정보의 흐름에 끊임없이 노출된다”면서 “창조란 그 정보를 새로 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책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 “우리 뇌의 엄청난 창조력”인데, 우리가 창조한 문화적 환경은 역으로 우리 뇌와 행동의 발달을 촉진해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나간다. 서문에 적은 “우리는 우리의 창조적인 뇌다”라는 문장은 저자의 전작 ‘우리는 우리 뇌다’를 떠올리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화가의 자화상’ /사진출처=반고흐미술관


뇌는 소통을 원한다. 사회적으로 추방되거나 고립되면 뇌에서 온갖 경보 시스템들이 작동한다. 반대로 사회적 인정을 받으면 뇌는 강력한 보상 효과를 일으킨다. 이 주장에 따르면 독방 감금은 가혹한 형벌이며, 정신병동의 격리 병실은 부정적 작용을 한다. 저자는 “복잡하고 정교한 우리 사회에서 뇌의 질병들이 사회적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뇌 질병에 걸릴 위험성은 유전적 요인과 발달 과정에 의해 결정되지만, 뇌 질병의 발생 여부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고흐가 피아노 연주에서 색을 느낀 것은 정신병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편집 망상을 동반한 간헐적 정신 문제, 환각과 불안, 인지기능 장애와 양극성 기분 장애, 청각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메니에르병을 앓았을 것이라는 추론은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끈다. 저자는 병을 진단하려는 게 아니다. 조울증을 겪으며 생애 마지막 2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슈만, 폭력에 가까운 정신적 압박을 받은 모차르트, 치매에 걸린 후 그린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빌럼 데 쿠닝 등의 예술가 사례를 분석하며 “뇌의 질병으로 인한 독특한 감각이 창조적인 능력으로 발휘되는” 경우를 탐색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노란색을 즐겨 사용한 것은 그가 자주 마시던 압생트 중독에 따른 황시증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탁월한 창조력은 정신질환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거론되곤 한다. /사진출처=반고흐미술관


추상회화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은 선과 면, 색 뿐이지만 감상자들은 작품 앞에서 대뇌피질 전반의 자극을 받으며 깊이 감상할 수록 과제의 정답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뇌의 즐거움을 얻는다고 한다. /사진제공=열린책들


창조성에 관여하는 핵심적인 뇌 구역인 ‘앞이마옆 피질’은 ‘개방성’과 관련 있다. 창조적인 작가,영화감독,과학자들의 단어 연상 능력을 비교하면서 자기공명영상을 촬영한 결과 언어와 직결되는 좌뇌 중에서도 내면 성찰, 자아와 관련 있는 뇌의 ‘디폴트 연결망’이 강하게 활동했다. 선과 색 뿐이라 뭘 그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추상미술’을 감상할 때 대뇌피질 전반에 자극이 일어나고 ‘디폴트 연결망’이 활발해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전체 인구를 놓고 봤을 때 창조적인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더 우수하지만, 창조력이 매우 높은 사람들은 정신의학적 질병에 걸릴 위험 또한 높다. 아무래도 평균보다 ‘뇌 연결선’을 더 많이 보유한 탓일 수 있다.

뇌의 창조성과 함께 창조적인 뇌의 활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활용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다. 미술 작품 감상은 치매 치료에 쓰이고, 모차르트의 음악은 심근 경색 환자의 혈압을 낮춰준다. 저자는 또 동성애 등 성적 취향이 태아기의 뇌 형성 과정에 결정된 선천적 성 정체성이라고 전하며, 안락사의 허용 범위 등 논쟁적·철학적인 질문도 던진다. 우리의 창조적 뇌가 오늘날의 사회를 만들었음에도 빈곤·차별·폭력 등의 스트레스 상황은 뇌를 병들게 하고, 병든 뇌는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본문만 680쪽 이상인 두툼한 책이지만 도판이 풍부하고 사례가 다양해 결코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과학책이다. 4만5,000원

사진 설명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