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가 매입 규모를 크게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하자 주가 방어를 위한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공시가 역대 최다치를 찍었지만 소각 비율은 높지 않았던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이다. 증권가에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본격적인 주주 친화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5월 13일까지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공시한 기업은 각각 45곳, 11곳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발병으로 인한 주가 급락에 자사주 매입·소각 기업 수가 각각 111곳, 17곳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로 늘어났던 지난해를 제외하면 지난 2010년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지난해 자사주 소각률(자사주 취득 대비 소각 규모)이 19%에 불과했던 것에 반해 올해는 223%로 대폭 늘었다. 특히 SK텔레콤 등이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참여하며 올해 들어 소각 총액(2조 2,054억 원)이 오히려 취득 총액(9,856억 원)을 크게 넘어선 것이다.
올해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기업들은 입을 모아 ‘주주 환원’을 강조했다. 일례로 SK텔레콤은 이달 4일 ‘고강도 주주 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주 869만 주(3일 종가 기준 약 2조 6,000억 원)를 소각한다고 발표했고 13일 소각 후 반영 변경상장을 완료했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ESG 경영을 강조해온 만큼 이번 자사주 소각를 통해 주주친화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008560)도 3월 1,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하며 “신탁계약으로 취득하는 주식은 전량 이익 소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연간 순이익이 4년 연속 증가했고 올 1분기 실적이 기대되는 만큼 실적 증가분을 주주 환원으로 연결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 미래에셋증권(006800)(823억 원)·한미반도체(042700)(165억 원)·드림텍(192650)(50억 원) 등도 모두 자사주 소각을 발표하며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했다.
지난해 자사주 취득 및 소각 기업이 급증한 것은 코로나19 발병으로 인한 주가 폭락에 각 기업들의 강력한 주가 방어 의지가 발현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면 올해는 ESG 경영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기업들이 주주 친화적 이미지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지난해 자사주 매입 급증은 팬데믹 영향으로 코스피지수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주가 방어를 위한 성격이 강했고 매입 대비 소각 기업 수가 적었다”고 분석했다. 취득의 경우 향후 자사주를 되파는 등 취득분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사주 소각이 주주들의 보유 주식 가치 상승에 더 큰 효과가 있다.
최석원 SK증권(001510) 리서치센터장은 “ESG 경영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 기업들이 거버넌스 부문 등에서 본격적인 주주가치 증대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며 “증시가 좋을 때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것은 기업 및 주주 가치를 끌어올려 주주 환원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주주 환원에 대표적 두 가지가 배당과 자사주 소각인데 소각이 주주가치 제고에 더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며 “올해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은 주주 환원의 강한 의지”라고 설명했다.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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