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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여중생 비극, 경찰·지자체 책임 떠넘기기 탓"

의붓아버지 성폭행 등에 극단선택

경찰 조사서 학대정황 포착됐지만

피해자 분리조치 없이 지자체 이관

지자체는 안일하게 보호기관 넘겨

충북지역 교육·여성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7일 청주지검 앞에서 여중생 투신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 청주에서 의붓아버지의 학대와 성폭행으로 두 명의 여중생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등 당국의 소극적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의붓아버지의 학대 정황이 포착됐지만 즉각 분리조치 없이 지자체와 보호기관으로 떠넘겨지면서 피해자의 불안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2일 청주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여중생 2명이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 등을 토대로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숨진 여중생들은 사고 전 성폭행과 학대 피해로 조사를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피의자는 숨진 A양의 의붓아버지 C씨였다. C씨는 A양과 함께 숨진 친구 B양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10일 B양 부모의 신고로 시작된 경찰 조사 과정에서 A양에 대한 C씨의 학대 정황도 포착됐다. A양은 학대 외에 성범죄 피해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3월 C씨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잇따라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그러는 사이 A양은 청주시청에 넘겨져 학대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A양이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자 청주시청은 3월 29일 충북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사례관리를 요청했다. 사건 조사가 한 달 넘게 지체되면서 A양은 불안감을 호소하며 보호기관의 조사를 미뤘고, 결국 친구 B양과 함께 주거지 인근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관할 당국의 소극적 대처와 책임 전가가 빚어낸 비극이라고 지적한다. 현행법상 친족 성폭행의 경우 아동학대로 규정해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보호조치할 수 있다. 경찰 조사를 통해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 지자체는 피해자를 보호시설로 옮겨 가해자로부터 분리하도록 돼 있다. 재범 위험에 노출돼있는 아동학대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신속히 분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정인이 사건’ 이후 정부는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가해자 분리 보호조치 규정을 한층 강화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과 지자체 모두 즉각 분리 보호조치에 소극적이었다. A양이 피해 진술을 거부하면서 C씨의 혐의 입증이 어려웠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학대 혐의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피해자 분리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만 모든 절차는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청주시 관계자도 “피해자가 조사를 거부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워 보호기관으로 넘겼다”고 말했다. 보호기관 측은 “피해자와의 대면조사를 세 차례 시도했지만 거부하거나 연락이 닿질 않았다”며 “좀 더 시간을 갖고 피해자 불안이 진정되면 조사할 방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조사자가 늘어날수록 피해자가 느끼는 무력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과도한 책임 전가 시스템이 어린 학생들의 무고한 희생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어린 학생들의 경우 전문심리상담을 통해 수치심과 공포심을 극복하고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의붓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 자체가 공포였을 A양을 생각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분리조치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당국의 안일한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충북교육연대 등은 지난 17일 “성폭력과 아동학대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조기 분리가 기본임에도 수사기관은 안일했다”며 “이번 사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두 명의 중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계부를 엄중 수사해 처벌해달라’는 글이 올라와 이날 현재 8만7,000명 넘게 동의했다.

/강동헌 기자 kaaangs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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