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8일 이용구 차관을 전격적으로 내치면서 검찰 조직을 상대로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단행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이 차관이 이날 오전 사의를 표명하자 오후에는 조상철 서울고검장이 용퇴를 결정하면서 일선 고검장들의 줄사퇴로 이어질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용구 차관은 이날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법무·검찰 모두 새로운 혁신과 도약이 절실한 때고, 이를 위해 새 일꾼이 필요하다 생각했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이 차관과 함께 비검찰 출신 법무부 간부인 강호성 범죄예방정책국장과 이영희 교정본부장도 이날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친정권 유력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 차관은 지난해 12월 초 법무부 차관에 내정됐다. 하지만 과거 술에 취한 상태에서 택시 기사를 폭행한 사실이 취임 직후 알려지면서 숱한 의혹의 중심이 됐다. 그는 변호사 신분이던 지난해 11월 술에 취한 채 택시 기사를 폭행했으나 경찰이 내사 단계에서 사건을 종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이 차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경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도 불거졌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이 차관의 폭행 혐의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하고 이 차관을 최근 소환 조사했다.
그간 버티기 전략을 고수하던 이 차관이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 차관을 내보내고 검찰 고위직 간부에 대한 용퇴 압박을 가속화하기 위한 노림수로 풀이된다. 이 차관이 정권 편에 선 유력인사라 해도 내보냈으니 고검장들도 맞춰서 거취를 결단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날 이 차관의 사의 표명 후 몇 시간 뒤 조상철 서울고검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다음 달 검찰 인사를 앞두고 고검장들이 사퇴하지 않으면 박 장관의 압박이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날 박 장관은 “(검찰 내) 인사 적체가 있다”며 사법연수원 23~24기 고검장들이 남아 있어 아래 기수 검사들의 승진이 정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열린 검찰 인사위원회에서도 고검장을 사실상 한직으로 내보내는 ‘탄력적 인사’를 단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박 장관이 승부수를 건 것은 이번 검찰 인사가 사실상 이번 정부의 마지막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권의 마지막 1년을 남겨 놓고 대규모 인사를 통해 쇄신 바람을 일으켜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등 검찰 개혁 이슈를 둘러싼 ‘레임덕’을 막으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정부 들어 6개월마다 검찰 인사가 단행되긴 했지만 내년 초 인사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 또 대규모 인사를 내긴 부담이다.
검찰 내에서는 고검장 사퇴 압박에 대해 평가가 엇갈린다. 한 검찰 관계자는 “신임 검찰총장이 오면 검찰 맏형들인 고검장들은 용퇴하는 게 관례였지만 지금은 용퇴가 아니라 쫓겨나는 모양새”라며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이번 검사장 승진 대상에 포함된 29~30기 검사들 숫자가 많다”며 “법무부가 압박 모양새로 명분도 만들어줬고 승진을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떠나는 게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구민 기자 kmso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