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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바벨탑의 저주는 끝났다

■ 책꽂이-바벨

가스통 도렌 지음, 미래의창 펴냄

현존하는 언어 6,000개 넘지만

제국주의 역사속 영향력 키워온

20가지 언어로 인류 90%가 소통

의성·의태어 다양한 한국어 등

모든 언어는 고유한 매력 지녀

사용자 많다고 우월한 것은 아냐

이란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견 된 고대 페르시아어 비문./사진출처=위키피디아




현재 지구 상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종류를 모두 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표준화 된 언어들만 기준으로 한다면 가능할 수 도 있겠지만, 한정된 지역에서 소수만 사용하는 국지 언어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언어가 적어도 6,000개는 될 것이라고 언어학자들은 추정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의 저주’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함을 벌하기 위해 신이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해 상호 소통을 막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다만 언어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다시 줄을 세어보면 오늘날 바벨탑의 저주는 상당부분 효력을 잃은 듯 싶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20개 정도로 추쳐진다. 모국어가 아닐지라도 각국 중앙 정부의 통용어 정책 등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현재 인류의 90% 정도가 20개 언어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천 종의 언어 중에서 이들 20개는 어떻게 오늘의 위치에 올랐을까. 그 답을 알기 위해 언어학자 가스통 도렌이 역사와 언어를 잇는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각 언어에는 제국의 침략과 항쟁, 문화와 상업 교류, 민족 또는 계급 투쟁의 과정이 오롯이 새겨져 있음을 알아냈다. 언어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흥망성쇠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있다. 도렌은 언어에 대한 탐구와 분석 결과를 신간 ‘바벨’로 정리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전세계 3억7,500만 명에 달한다.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2언어로 영어를 사용한다.


도렌이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추려낸 20가지 언어는 영어, 북경어, 스페인어, 힌디, 아랍어, 벵골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말레이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와힐리어, 일본어, 펀자브어, 페르시아어, 자와어, 터키어, 타밀어, 한국어 그리고 베트남어다. 역사적으로 언어를 확장하고 운반하는 일은 주로 제국주의가 맡았다. 페르시아어, 포르투갈어, 영어 등은 모두 제국주의의 확장에 따라 본토를 벗어나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스페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도 식민지 정책에 따라 바다와 육지를 통해 확산했다. 아랍어와 터키어, 중국어, 베트남어 역시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간 왕들에 의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독일어와 일본어, 자와어, 한국어, 벵골어, 펀자브어, 타밀어 등은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오래도록 사용되면서 주요 언어의 지위에 올랐다.

다른 민족 또는 문명과 교류가 많았던 언어들은 무수한 변화를 거쳤다. 영어와 페르시아어는 그 과정에서 문법이 단순화됐다. 영어의 경우 바이킹족이 잉글랜드에서 가정을 꾸리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어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던 주변 민족들이 페르시아에서 한데 모여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복잡성이 사라졌다. 소통의 편리를 취하는 과정에서 어미 변화나 성 구분 등이 약화된 것이다.



터키어는 언어학적으로 굉장히 이례적인 급진적 변화를 통해 오늘날의 언어 형태를 갖췄다. 터키어는 오랜 역사 교류 과정에서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의 어휘를 대부분 빌려왔고, 문법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은 언어다. 그러다가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세워진 후 인위적인 ‘데브리미(언어 전복)’가 시작됐다. 1935년에는 신문에 실린 어휘 중 순수 터키어 단어가 35% 정도였으나 1965년에는 61%까지 증가했다. 당연히 격변에는 무수한 갈등과 어려움이 뒤따랐다.

1억 명에 가까운 사용자가 있지만 영향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언어도 있다. 인도네시아 자와 섬 등지에서 사용되는 자와어다. 이유는 크라마라는 격식체 때문이다. 단순한 존댓말이 아니다. 무례함과 정중함 사이의 단계가 과도하게 구분돼 있고, 이는 현지인 간의 소통까지 어렵게 하고 있다. 심지어 오랜 시간에 걸친 자연스러운 언어 변화가 아니라 지배층이 의도적으로 만든 가식적 언어였다. 이에 현재는 말레이어가 인도네시아어라는 새 이름을 달고, 국가 언어로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모국어와 제2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8,000만 명 정도다. 사진은 한국어 해례본.


저자는 한국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에 주목한다. 표현적이고 회화적인 면이 두드러진다고 평가한다. 또 일본어에 대해서는 언어적 성 분리를 주요 특성으로 주목하면서 일본의 문화적 특성과 연결한다.



저자는 주요 20개 언어가 특별히 우월하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언어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영어가 한때는 잉글랜드 지역의 300만 명 정도가 사용하는 소수 언어였던 것처럼 언어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는 모두 고유한 역사적, 사회적, 문학적 언어적 특징과 개별 매력을 갖고 있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언어들도 마찬가지다. 2만3,000원.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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