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면 인도에는 나렌드라 모디(사진)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부르짖은 것처럼 모디 총리는 ‘강한 인도’를 외쳤다. 이 ‘인도의 트럼프’는 지난 2014년 5월 총리에 취임한 후 민족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정치 노선에 따라 중국과 각을 세웠다. 해외투자 유치에도 탁월했던 모디는 워낙 인도 밖으로 많이 나가 '재외동포(non-resident Indian)'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모디는 2018년 7월 삼성전자 노이다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다. 집권 초기 90%의 지지율을 기록할 만큼 잘나갔고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로 인도에 다시 ‘제조 붐’을 일으킨다는 호평을 받았던 모디가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방역실패, 델타변이까지…경제총리 이미지 퇴색
2019년 재임에 성공해 3년 차에 접어든 그는 방역 실패로 지지율이 취임 초 대비 3분의 1토막이 났다.
누적 확진자 수는 3,000만 명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일일 확진자 수는 5월 초순 41만 명에서 최근 5만 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이번에는 인도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모디는 얼굴 들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 방역 책임론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인 타브린 싱은 인디언익스프레스에 “코로나19 대유행을 무시한 결과 모디의 운과 리더십이 바닥났다”며 “그에게 올해는 최악”이라고 꼬집었다.
경제 침체로 ‘경제 총리’ 이미지도 완전히 퇴색했다. 사실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모디가 취임한 2014년 7.4%를 기록한 후 2017년까지는 7%로 괜찮았다.
하지만 화폐 및 세제개혁의 부작용으로 2018년 6.1%, 2019년 4.2%로 내리막을 타더니 급기야 지난해는 코로나19로 -7.97%까지 추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디의 지지율이 최근 31%까지 빠졌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5월에 치러진 5곳의 지방선거 결과 핵심 지역으로 꼽힌 웨스트벵골주를 포함한 3곳에서 참패했다.
中, 쿼드 ‘약한 고리’ 인도 공략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대중 강경책도 어려워졌다. 국경 문제로 45년 만인 지난해 6월 중국과 총기 충돌까지 벌일 만큼 모디의 인도는 반중 색채가 강했다. 특히 인도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협의체) 참여국이기도 하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도 자체가 휘청거리면서 외교도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 코로나19로 대중 경제 의존도는 부쩍 높아졌다. 지난해 6월만 해도 인도 정부는 중국과의 국경 갈등 후 틱톡 등 중국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올해 중국과 인도 간 교역량은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늘었다.
모든 국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중국산 의료 용품 수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혈액 내 산소 농도 측정 장비인 펄스옥시미터의 90%가 중국산이다. 불매 운동의 대상이었던 중국 대표 정보기술(IT) 기업 샤오미는 올 1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전년 대비 출하량을 4% 이상 늘리며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델타 플러스 변이까지 창궐하면서 당분간 중국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모디 총리에게는 또 다른 악재다. 코로나19로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 같은 강경 대응 카드를 꺼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대로는 2024년 선거 승리 장담 못해
일각에서는 모디 내각의 방역 실패가 지속될 경우 앞으로 3년 남은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쳐 모디 내각의 실권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모디의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음에도 그가 이끄는 인도 국민당(BJP)은 여전히 연방의회를 완전히 주도하고 있다. 전국 28개 주 가운데 여권 연합이 장악한 곳은 17개 주에 달한다.
또 인도 인구의 80%가 힌두교도라는 점도 모디 총리의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다. 여기에 야당의 결속력도 약한 편이다. 총선이 오는 2024년인 점도 모디 총리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추스를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총선에서 집권당이 얻은 의석 중 상당수가 근소한 차이의 승리이었다는 점에서 정권 교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남아시아센터장인 이르판 노르딘 연구원은 “총선이 치러질 때면 집단적 분노와 기억은 사라질지 모른다”면서도 “내년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선거가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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