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좋소’의 충범 같은 20대 후반 사회초년생이나 이과장이 대변하는 30대 중후반 직장인이나 모두 어딘가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이 콘텐츠를 본 모두) 어느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해도 본인이 노동자란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일했으면 합니다. 평범히 사는 우리 모두 주눅들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이과장이라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유튜버)의 채널에 올 1월부터 한 웹드라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직원 수 8명 안팎의 영세한 중소기업을 배경으로 열악한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인기를 끌었고, 회당 평균 조회수가 100만건을 웃돌았다. 날로 커지는 인기에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왓챠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고, 왓챠에 미공개 장면이 포함된 확장판 버전을 선공개하게 됐다.
지난 10일 세 번째 시즌의 막을 내린 ‘좋좋소’(좋소좋소좋소기업)의 이야기다. 최근엔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뉴미디어 콘텐츠상에 후보로 오르며 주요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첫 화부터 시즌3까지 감독과 각본을 맡았던 유튜버 빠니보틀(본명 박재한)은 최근 서울경제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마음속으로는 ‘어어, 이거 왜 이러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며 “소규모로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며 작품을 끝낸 소회를 이 같이 밝혔다.
‘좋좋소’는 29살에 첫 직장으로 정승네트워크라는 중소 무역회사에 취업한 사회초년생 조충범을 비롯한 회사 직원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철저한 현실 고증에 바탕을 두다 보니 중소기업에서 있을 법한 열악한 복지, 상사의 무리한 요구, 형편없는 처우, 사내정치, 체계 없는 의사결정 등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빠니보틀은 “주로 이과장 등 주변 유튜버, 무역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 인터뷰하고 사례를 모아 이야기를 만들었다”며 “디테일한 부분은 중소기업 근무 경험이 많은 이과장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여러 인물들이 빛나지만, 특히 주인공 충범의 캐릭터에는 빠니보틀 자신이 많이 투영돼 있다. 그는 “좋좋소 속 이야기의 적지 않은 부분에 제 자기반성도 많이 내포돼 있다”며 “패배주의적 면모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회피하고 무능력한 모습 등 충범이란 인물의 특징에 제 20대 시절 무책임했던 실제 모습을 많이 따 왔다”고 말했다.
‘좋좋소’ 속 리얼리티의 구성에는 연기자들의 연기도 큰 몫을 했다. 조충범 역할의 남현우가 연극배우 출신인 걸 비롯해 출연자 모두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다. 이 과장(이과장 분), 정 이사(조정우 분) 등 전업 배우가 아닌 이도 잘 녹아들어간다. 애초 연기를 해 본 적 없는 일반인에게 따로 연기지도도 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일반인 같은 연기를 하려면 외려 아무 것도 학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더니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그는 돌아봤다.
리얼리티가 매우 잘 살아난 작품이다 보니 ‘중소기업 가지 말라는 이야기’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는 “그런 식으로 비치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면서도 “극중의 모습이 인원 수가 적은 중소기업에서만 벌어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내 정치, 근무 태만, 각종 노동법을 악용한 열악한 근무 환경 등 모든 사장과 직원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은 중견기업,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드라마에서 현실을 보여줘 충격요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제 의도가 어느 정도 먹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난날의 태도에 대해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단 하나라도 좋좋소 에피소드를 보면서 뜨끔하거나 와 닿는게 있어서 조금씩이라도 바뀐다면 모두에게 이득이 아닐까요?”
한편 빠니보틀은 본업인 여행 유튜버로서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좋좋소’를 떠났다. 다만 ‘좋좋소’는 시즌4 등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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