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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외치며 지원예산은 부족…"민간에 부담 떠넘겨"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

<중> 미래전략 안 보이는 슈퍼예산

석유계 원료 교체 218조 드는데 예산 배정 74억 불과

희토류 등 미래자원 개발 지원은 거의 끊기다시피 해

"실패 두려워 번트만…" 국가 R&D체계도 대수술 시급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연구원들이 핵융합장치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경제DB




정부가 내년 604조 원이 넘는 초슈퍼 예산을 편성했지만 미래 먹거리와 연관된 투자 분야는 곳곳에서 구멍이 발견되고 있다. ‘MB(이명박) 사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사실상 중단 위기에 몰린 해외 자원 개발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탄소 중립 선언만 해놓은 뒤 제대로 된 지원 체계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산업구조 저(低) 탄소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매년 덩치가 불어나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도 막상 돈을 받아 쓰는 현장에서는 “실패가 두려워 번트만 대느라 홈런이 나오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격형’ 미래 전략 수립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국·중국·일본 등 경쟁국을 따돌릴 수 있는 ‘선도형’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의 기준을 ‘재생에너지 3020’으로 잡았다. 이는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늘린다는 정부 정책 목표다.

문제는 정부가 이르면 이달 말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35% 이상으로 상향해 발표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목표치 달성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최대 40%까지 늘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내에서도 일종의 ‘엇박자’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민간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배 이상으로 늘리는 게 가능한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일단 계획이 나왔으면 내년부터라도 발전 단지, 송배전 시설, 석탄발전 사업자 보상 등에 대한 대대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3020을 기준으로 짜여진 정부 예산으로는 선제적 대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확정된 3020을 기준으로 예산이 마련됐고 NDC가 확정되면 별도 사업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 한 채 별도 예산을 또 마련하겠다는 셈이다.

저탄소 시대 산업구조 대응에 대한 정부 지원 예산도 민간 전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첫 단추부터 민간에 부담을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를 들어 정유화학 업계는 석유계 원료를 바이오 매스 등으로 교체하는 데 2050년까지 218조 원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부가 관련 공정 기술 개발에 배정한 내년도 예산은 고작 74억 원에 불과하다. 물론 투자 자금 차이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렵지만 정부가 미래차나 반도체 산업 등에 들이는 공에 비해 탈(脫)탄소 충격을 받는 굴뚝 산업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박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국내 대형 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는 수조 원대 세금 감면 혜택을 주면서 정작 생존 절벽에 몰린 굴뚝 기업들은 ‘기후 악당’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2018년 리튬 1,350만 톤이 매장된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소금호수 개발권을 확보했다. 아르헨티나에 건설 중인 리튬생산 공장과 리튬 염수저장시설 전경. /사진제공=포스코


정부 지원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해외 자원 개발도 이대로 가면 미래자원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희토류를 둘러싼 미중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 자원 선점이 중요한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6월 자국 내 희토류 재생산을 선언하면서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무역 규제를 검토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중 갈등이 우리나라 원자재 값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정부가 올해 지난해보다 3.4% 늘려 7,300억 원 규모로 책정한 미래 인재 양성 예산도 현장에서는 “이 정도는 일본 등 경쟁 국가와 비교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인재 예산 증가율은 본예산 증가율(8.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정부는 2018년부터 인공지능(AI) 대학원 지원 사업을 추진하는 등 인재 육성에 나섰지만 대학별 지원금액이 연간 20억 원 수준에 그쳐 장비 구입이나 해외 우수 교수 초빙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일본 정부가 AI 인재를 연간 25만 명씩 육성하겠다고 나선 것과 비교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우리 R&D는 대학을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해 대학을 혁신과 창업의 허브로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대학들이 도전적인 과제를 설정해 ‘번트’ 대신 ‘홈런’을 노릴 수 있도록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R&D 체계 전반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국가 R&D 사업의 과제기획·선정평가 체계 분석’ 보고서에서 “수요자가 원하는 R&D 과제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성과 평가 과정에서도 전문성과 공정성이 떨어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R&D 예산 지원이 시급한 중소기업 집행 금액 비중이 2019년 기준 14.9%에 그쳐 성과 창출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예정처의 설명이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재정 지출 현황을 보면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기여도가 추세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며 “정부가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를 성장 대신 분배나 복지 쪽으로 맞추면서 효율성이 낮아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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