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낡은 원도심 복구를 위해 도시재생사업에 수조 원을 투입했지만 ‘쇠퇴’가 멈춘 지역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시재생선도사업’으로 선정해 사업을 완료한 12개 사업지(30개 행정동) 가운데 쇠퇴가 중단된 곳은 ‘제로(0)’였다.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도 인구 유출 및 사업체 감소, 건물 노후 등 지역 슬럼화를 멈추지 못한 것이다.
5일 서울경제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를 바탕으로 12개 도시재생선도사업에 포함된 30개 행정동의 쇠퇴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20년 말 기준 30개 동 전체가 ‘쇠퇴 지역’에 해당했다. LH는 전국의 읍면동(행정동 기준)이 인구 사회, 산업 경제, 물리 환경 등 세 부문 중 두 부문 이상에서 기준을 넘으면 도시재생이 필요한 쇠퇴 지역으로 분류한다. 구체적으로는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기 대비 20% 이상 또는 3년 이상 연속 감소하는지 △사업체가 5% 이상 3년 연속 줄어드는지 △20년 이상인 건축물이 절반을 넘는지다.
국토교통부는 2014~2015년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을 비롯해 총 13곳을 도시재생선도사업지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광주 동구 선도사업지를 제외한 12곳(30개 동)은 2017~2018년에 도시재생사업을 마무리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년까지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금 및 공기업 등이 집행한 예산은 2조 7,407억 원에 달하며 2018년 한 해에도 2조 1,084억 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30개 동 모두 사업 종료 후 2~3년이 지난 2020년 말 기준으로 쇠퇴를 판단하는 두 가지 이상 부문에서 기준을 넘으면서 쇠퇴가 멈춘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투입되면 지역의 자산가치가 상승하고 인구와 사업체가 늘어야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은 이 같은 정책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투자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재개발·재건축과 연계하는 등 근본적인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도사업 가운데 쇠퇴 멈춘 곳 ‘0’
국토교통부 산하 LH 도시재생정보체계에 따르면 현재 460개의 전국 도시재생사업 가운데 지난해 말까지 사업이 마무리된 사업은 선도사업지역을 포함해 모두 58개 사업이다. 행정동 기준으로는 93개 동이 해당한다. 서울경제가 LH의 전국 행정동 쇠퇴현황 자료(2020년 말 기준)를 분석한 결과 재생이 마무리된 93개 동 가운데 84개 동이 여전히 쇠퇴 기준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30개 동은 선도사업지역 12개에 속한 곳이다.
쇠퇴에 해당하지 않는 9개 동 가운데 7개 동은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 2017년 말 당시에도 쇠퇴가 일어나지 않은 지역이다. 결국 광주 광산구 도산동과 강원 춘천시 근화동 2개 동만이 도시재생을 진행한 후 쇠퇴가 멈췄다. 93개 동 가운데 2개 동(2.2%)만이 도시재생사업의 정책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 도시재생선도지역이다. 올해 초까지 약 1,170억 원이 투입됐지만 창신1동의 경우 인구가 과거 최대 시점 대비 60.1% 감소했고 5년 연속 축소됐다. 사업체 수 역시 최근 2년 연속 줄었고 노후 건축물 비율은 91.8%에 달한다. 창신·숭인 지역은 노후 목조주택이 많아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주택가 길이 비좁고 계단이 많아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서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동네살리기 활성화 사업이 진행됐지만 2020년 말 기준 여전히 쇠퇴가 진행 중이다. 사업이 진행된 2년 동안에도 쇠퇴가 멈추지 않으면서 5년 연속 인구가 줄었고 4년 연속 사업체 수도 감소했다. 최대 시점 대비 인구 감소폭은 2017년 -12.3%에서 2020년 -27.5%로 오히려 심화됐다. 같은 기간 노후건축물 비율은 68.3%에서 68.7%로 증가했다.
수조 원 들여놓고 이제서야 “통합 성과 측정”…전문가들 “개념 재정립해야”
도시재생의 효과는 사실상 전무한데도 투입 예산은 조 단위에 이르고 있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17년까지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민간투자 포함 누적 2조 7,407억 원이 투입됐다. 2018년에는 2조 1,084억 원이 들어갔고 이후 투입 규모가 급증하면서 2019년 한 해에만 3조 5,461억 원이 집행됐다. 국비만 따로 떼어 봐도 2018년 1,578억 원에서 2020년에는 6,776억 원으로 늘었다. 2021년과 2022년의 경우에도 여전히 2018년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예산은 늘지만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공개적인 정책 성과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는 ‘추진실적평가’라는 지표를 이용해 도시재생을 마친 지역의 성과를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예산집행률과 공정률 등 사업 완료 정도를 확인하는 용도에 그친다. 관계 기관의 설명을 종합하면 준공 이후 쇠퇴도가 달라졌는지를 파악하는 평가 자료가 존재하지만 이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도시재생과 관련 종합 성과 평가라는 새로운 평가 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성과 평가 지표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사업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해외의 경우 결국 인구 및 고용 증가를 도시재생의 핵심 지표로 삼고 수십 년까지 기간을 두고 진행할 뿐더러 도시재생에 정비사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한국도 도시재생의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국내 도시재생 사업에서 활동가들을 지원해 마을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개념은 애초 미국에서 노후 지역에 유입된 저소득 유색인종의 범죄율 등을 낮추기 위해 도입한 요소가 맥락에 맞지 않게 도입된 측면이 있다”며 “주택과 기반시설이 정비돼 주민들의 자산가치가 오르지 않으면 커뮤니티를 강조해도 결국 주민들은 떠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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