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맞춰서 대출 예약 문자 보냈는데 안 됐네요. 일하면서 대출 신경 쓰는 것도 지쳐요.”
경기도 하남의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3일 한숨 섞인 글들이 쏟아졌다. 이 아파트의 집단잔금대출 은행으로 참여한 제2 금융권 소속의 A 금융사에서 지난 12일 오전 입주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선착순으로 집단잔금대출을 모집했다. A 금융사가 이 한도를 100억 원으로 제한한 데다가 최근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집단대출을 해줄 1금융권이 실종되면서 입주 예정자들의 신청이 쏠렸다. 접수가 시작되고 일 분도 채 안 돼 신청 문자가 200통 이상 몰리더니 결국 100명도 채 처리되지 못하고 한도가 다 찬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의 전방위적인 가계대출 조이기로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은행 대출을 끼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이 폭등한 반면 은행들의 대출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선착순 대출’이 현실화되면서 금융 당국의 공언과 달리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 강화로 은행들이 중도금, 잔금에 대한 집단대출에 선뜻 나서지 않으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무주택자들의 글들이 이어졌다. 제한된 한도로 집단대출에 나선 은행들조차 선착순 문자로 접수를 받고 있다. 경기도 다산의 신축 아파트에서도 이날 정오 B 은행에서 선착순 문자로 집단잔금대출 사전 접수를 진행했다.
아직 집단대출 은행이 정해지지 않은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1금융권에서 집단대출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입주 예정자들은 중도금·잔금을 치르기 위해 2금융권뿐만 아니라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고 있다.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쉽지 않다. KB국민·우리은행이 지점별 한도 관리로 전환한 데 이어 국민은행은 잔금대출 시 분양가·KB시세·감정가액 중 가장 낮은 것을 기준으로 삼기로 해 대출 가능액이 대폭 줄었다. 대출 수요가 지방은행으로까지 확산되면서 BNK경남은행이 이달 12일부터 주담대, 전세자금 대출, 신용 대출 등에 대한 신규 접수를 중단했다. 이달 5일 갓 문을 연 토스뱅크도 영업 개시 나흘 만에 올해 대출 한도 약 5,000억 원 중 3,000억 원 이상을 소진해 금융 당국에 한도 증액을 요청한 상황이다.
서민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 모기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동산 열풍으로 정책 모기지를 이용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재원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주택금융공사가 이날부터 보금자리론 신청 가능한 기한을 기존 대출희망일이 신청일로부터 20일 이후에서 40일 이후로 더 늘린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보금자리론은 서민 실수요자를 위한 대표적인 정책 모기지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최대 70%로 은행 주담대(40%)보다 낮고 금리도 연 2.90~3.30%로 시중은행(4%대)보다 낮아 청년층, 신혼부부 사이에서 수요가 높다.
이에 주금공은 대출 모집인을 통한 보금자리론 판매를 한시 중단한 데 이어 대출받고자 한 날로부터 한 달 이상 미리 신청하게 함으로써 재원 관리의 끈을 조이려는 것이다. 주금공 측은 “지난달부터 서민 우대 프로그램까지 도입해 서민들에게 0.1%포인트 우대금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자격 요건에 맞는지 꼼꼼하게 심사하기 위해 기한을 늘린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입주 예정자, 서민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계속되면서 당국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은 매년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시행하면서 은행들이 목표치를 넘어 초과 대출을 내줘도 뚜렷한 제재를 하지 않았고 이에 은행들이 관행적으로 과도하게 대출 영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은행권의 실제 가계대출 증가액은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목표치에 따라 자체 설정한 목표 증가액을 매년 뛰어넘었다. 은행권에서 자체 설정한 가계대출 목표 증가액과 실제 증가액 간 격차만 해도 2017년 4조 9,000억 원에서 2019년 9조 4,000억 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금융 당국이 2~3년에 걸쳐 유연한 관리를 주문했지만 1년 뒤인 올해 금융 당국은 은행권에 5~6%대의 가계대출 목표 증가율을 제시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당초 올해 목표치도 명확한 숫자를 제시한 게 아니라 5~6% 선으로 제시해 은행들이 과도하게 영업하도록 놓아둔 측면이 있다”며 “여기에 농협은행의 대출 중단까지 겹치면서 초유의 대출 중단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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