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초 암호화폐 관련 토론회에 취재를 하러 갔다가 들은 한 관료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기술은 파괴적일 수 있으나 법은 파괴적일 수 없다”며 “파괴적일 수 있는 기술을 파괴적으로 법에 담는다면 혼란은 극심해질 수 있으니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법의 무게 뒤에 숨어 신산업 대응을 미룬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국민의 혼란을 막는 것도 중요한 임무라는 그 관료의 철학은 인상적이었다.
이후 부동산 분야를 취재하면서 정책가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오히려 반대다. 임기응변식으로 규제지역을 늘리면서 실미도까지 조정지역에 편입한 것도 그렇고 군사작전하듯 임대차 3법을 시행한 것도 그렇다. 최근에는 기습적인 대출 제한에다 종합부동산세 사태까지, 정부는 그야말로 파괴적일 수 있는 정책을 파괴적으로 법에 담고 있다.
뒤따르는 혼란은 국민의 몫이다. 서울 전 지역이 규제지역이 되니 경기도 외곽까지 십수억 원짜리 아파트가 나오는 풍선 효과가 발생했다. 다주택 취득세를 늘리니 지방의 공시가격 1억 원 미만 주택의 싹쓸이 현상이 나타났다. 임대차 3법으로 서울의 전세 보증금이 4억 원에서 6억 원으로 뛰었다.
종부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18년 최고 세율을 3.2%로 올린 지 2년도 안 된 지난해 6%까지 또 올렸다. 그 사이 정부는 집값이 오르지 않더라도 오는 2030년까지 공시가격이 오르도록 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그 외 공정시장가액 비율 상향, 과세 기준액 상향 등을 포함하면 2년간 종부세 관련 제도만 다섯 차례 바뀌었다. 그 결과 300% 오른 고지서를 받아 든 대상자 입장에서는 혼란 그 자체다. 그중에는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도 상당한 듯하다.
정부는 이에 대해 종부세 대상자가 2%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한다. 정부가 주장하기에는 부적절한 논리다. 소수의 국민이라면 파괴적인 법의 대상이 되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정부는 세상에 없다. 물론 정책 대상자가 많으면 더욱 신중해야 하겠지만 소수라고 해서 파괴적 정책을 펴면서 혼란을 감내하도록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약 부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을 이용한 해명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그런 논리라면 공무원도 전 국민의 10% 남짓인 소수집단이며 그 외 언론인이나 대기업 종사자 등 숫자는 적으면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은 집단은 국내에 차고 넘친다. 소수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리다.
2% 정도라면 괜찮다는 정부의 해명을 받아들인다 치자. 그렇다면 임대차 3법이나 대출 제한, 각종 부동산 정책으로 국민 상당수가 겪은 혼란들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물어볼 차례다. ‘2%냐, 98%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2%, 98%를 가리지 않고 파괴적으로 펼쳐온 그동안의 정책 방향과 방식의 정당성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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