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자취를 감춘 5만원 지폐와 달리 100원 동전은 발행량보다 더 많이 환수돼 한국은행이 동전 보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가 안 좋으면 집에 있는 동전까지 털어 쓰기 때문에 환수량이 많아지는 것은 불황 때마다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최근엔 비현금 결제 비중이 늘어나는 등 결제 환경 변화까지 겹쳤다. 코로나19로 현금 사용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동전을 점차 사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6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10월 100원 동전 환수율은 214.5%를 기록했다. 올해 100원짜리 동전이 100개 발행됐다면 두 배보다 많은 214개가 돌아왔다는 의미다. 화폐 환수율은 일정 기간 중앙은행이 공급한 화폐 발행액 대비 다시 돌아온 환수액 비율을 말한다. 시중에 풀린 돈이 얼마나 되돌아오는 지를 통해 각 화폐별로 수요나 사용 경로 등을 가늠하고 있다.
100원 환수율은 2011~2016년까지만 해도 20%대 수준이었으나 2017년부터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350.1%까지 치솟았다. 이러한 현상은 500원이나 50원 등 다른 동전에서도 관찰된다. 500원짜리 동전 환수율은 2015~2016년 9~10% 수준까지 낮아졌으나 지난해(149.9%)부터 급등해 올해 1~10월엔 189.0%를 기록했다. 50원 동전 역시 2019년 56.7%에서 2020년 133.7%, 올해 1~10월 130.6%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은은 금융기관을 통해 지폐나 동전을 환수한 뒤 다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는 재발행을 위해 금고에 보관한다. 지난해부터 발권국 예상보다 더 많은 동전이 환수되면서 일시적으로 보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동전은 순발행 될 뿐 환수되는 구조가 아니었는데 최근 환경이 급변하면서 늘어난 보관 수요를 일시에 처리하기 어려워졌다”라며 “최근 누적돼 있던 환수 수요를 처리하면서 유통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침체에 저금통 털어…동전 사용 급감
100원을 포함한 대부분 주화 환수율이 급등한 배경에는 경기적 요인뿐 아니라 구조적 요인이 다양하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먼저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기에는 동전 환수율이 높게 나타난다. 가계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 저금통이나 서랍장 등 집 안에 보관하고 있던 동전까지 꺼내 쓰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가 상승에 가격이 500원이나 1,000원 단위로 올라 거스름돈으로 100원 동전을 받을 일도 줄었다. 그나마 동전 사용이 필요했던 자판기도 사라지거나 카드 등 비현금 수단 등으로 결제할 수 있게 됐고, 심지어 톨게이트조차 현금을 내지 않는 등 수요가 점차 줄면서 쓸모가 많지 않자 환수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화폐 사용 환경이 급변하면서 500원과 100원 주화 사용이 점차 줄어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체 지급수단 중 현금 사용 비중(금액 기준)은 2017년 20.3%에서 2019년 17.4%로 낮아졌다. 지난해 이후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현금 사용 비중은 더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신용 등 실물카드뿐 아니라 비대면 결제나 카드 단말기나 QR코드 등 결제 단말기에 모바일기기를 접촉하는 ‘삼성페이’ 등 방식이 급격히 확산해 현금 쓰는 일은 더 줄었다.
동전 수요가 줄어들면서 한은도 동전 발행을 점차 줄이고 있다. 한은의 동전 발행액은 2016년 912억 7,000만 원에서 2017년 495억 4,000만 원으로 급감한 뒤 지난해 254억 8,000억 원까지 감소했다. 예전에 발행한 동전은 계속 돌아오는데 한은이 발행량을 줄이면서 환수율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다만 동전 중에서 10원만 유독 환수율이 낮은 상태다. 올해 1~10월 10원 환수율은 27.0%로 2017년(55.5%) 이후 2018년(17.9%), 2019년(12.8%), 2020년(19.3%) 등으로 다른 주화 대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은은 소매점 등에서 비닐봉투 가격으로 20원을 받고 있어 수요가 여전하고, 액면 가치가 낮아 사용하지 않고 보관하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저금리에 5만원 보관 수요 늘어…현금 사용 더 줄어들 것
반면 5만원은 코로나19 이후로 여전히 찾아보기가 어렵다. 5만원권 환수율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60.1%에서 지난해 24.2%로 급격히 낮아진 데 이어 올해 1~10월 17.7%까지 떨어졌다. 이는 5만원권이 발행되기 시작한 2009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5만원이 현재 발행 중인 최고액권인 만큼 지하경제로 유입됐을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다만 한은은 코로나19 이후 예비용 수요로 5만원권 환수율이 낮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코로나로 대면 상거래가 어려워지면서 화폐유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금보유 성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최근 한은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상해 1.0%까지 올렸으나 코로나19 이전(1.25%)보다 낮은 저금리 상황인 만큼 가치저장 수요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5만원권이 발행되지 얼마 되지 않은 성장기에 있는 만큼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금융연구원은 5만원권을 중심으로 현금 환수율이 급감하는 등 화폐가 유통되지 않고 시중에 잔류하는 이른바 ‘퇴장(hoarding)’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현금 사용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장기적으로 시중 잔류 현금에 대한 환수 여부와 환수 정도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관련 논의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1~2년 나타나는 화폐 사용 환경 변화는 과거 10~20년보다 빠르다”라며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여러 지급수단 중에서 화폐의 사용과 거래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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