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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사랑한 꽃, 궁중채화

[문화재의 뒤안길]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홍벽도화준. /사진 제공=문화재청




1886년, 조선의 고종은 프랑스 대통령 사디 카르노와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고종은 이 조약을 맺으며 프랑스 대통령에게 특별한 꽃을 선물했다. 두 개의 놋쇠 반(盤) 위에 금분을 입힌 고목을 세우고, 얇은 나무판을 오려 물들인 측백 잎을 달고 주위에는 옥을 깎아 만든 난초와 아기자기한 꽃장식을 둘러쳤다. 조선의 예술품, 궁중채화였다.

궁중채화란 옛 궁중의 각종 연회에서 사용한 가화(假花)를 뜻한다. 재료는 비단에서부터 견직물, 모직물, 광물, 깃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려사’에 따르면 궁중에 소속된 장인들이 궁중채화를 제작했고, 이를 전담해 총괄하는 관리 직책이 있었으며, 연회에 참석한 외빈에게 왕이 직접 꽃을 하사했다고 한다. 1019년(현종 10) 전쟁에서 승리한 강감찬 장군에게 왕이 친히 금으로 만든 여덟 가지의 꽃을 머리에 꽂아주었다는 기록까지 있는 것을 보면, 채화가 국가와 왕실의 위상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채화는 특별한 날에 격식을 달리하며 사용됐다. 용도에 따라 청화백자 화병에 홍색(紅色)과 벽색(璧色)의 복숭아꽃을 나뭇가지에 드리워 꽂아 어좌를 장식하는 준화(樽花), 왕실 가족만을 위한 연꽃 여덟 송이의 수파련(水波蓮)으로 잔치상을 장식하는 상화(床花)를 비롯해 머리에 꽂는 수화(首花) 등으로 구분했다. 왕실행사에 쓰이는 채호들은 재료 준비부터 완성작의 종류와 개수, 소요경비 일체를 왕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요했다.



궁중채화 홍벽도화준. /사진 제공=문화재청


자연 그대로의 꽃을 구현하기 위한 궁중채화의 제작과정은 엄정하고 정교하다. 직물의 정련, 염색, 매염을 거쳐 천에 풀을 먹인 후 오랜 시간 정성스런 다듬이질로 재료를 손질한다. 섬세한 가위로 꽃잎을 마름질하고, 인두에 밀랍을 묻혀 잎맥과 잎사귀에 생동감을 준다. 그렇게 숱한 손놀림을 거쳐 한 송이의 꽃이 완성된다. 수많은 꽃들은 격식에 맞게 나무줄기와 가지에서 피어나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다.

오늘날 궁중채화는 황수로(본명 황을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에 의해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며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궁중채화의 기록화 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궁중채화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널리 알려지고 계승되기를 기대해본다. /강석훈 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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