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기점으로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를 양대 축으로 하는 미래차 전환에 가속이 붙고 있다. 수개월 새 폭스바겐·포드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 회사들이 잇따라 전동화 부문의 대대적인 투자를 선언하면서 국내 업체들도 갈 길이 바빠진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자동차 업계에서는 강성 노조가 미래차 전환에 수반되는 인력 감축이나 전환 배치 등에 제동을 걸면서 자칫 산업구조 재편 흐름에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미래차 핵심 기술력은 주요국에 크게 뒤처진 데다 신사업을 이끌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차 전환에 발목잡는 노조
2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자동차와 한국GM의 노조 지부장 선거에서 강성 성향으로 분류되는 안현호 후보와 김준오 후보가 당선됐다. 최근 결선 투표가 마무리된 기아에도 강성 집행부가 들어섰다. 이들 당선인은 모두 ‘고용 안정’에 무게를 둔 공약을 내걸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산업구조 재편이 가속화할수록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최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오는 2030년 전기차 비중이 33%에 도달할 경우 약 3만 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들이 내건 공약은 대부분 미래차 시대 준비에 역행한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차기 노조 집행부의 핵심 공약은 자동화·물량 이관 등 고용 불안 요소 척결과 친환경차 핵심 부품 사내 조립, 해외 공장 운영에 대한 개입력 강화 등이다. 이미 현대차는 미국 정부의 전기차 인센티브 정책 등에 맞춰 글로벌 현지 생산을 고심 중이지만 노조의 반대로 논의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산공장의 전기차 전용 생산 라인 전환 작업도 고용 대책을 요구하는 노조의 반발에 가로막힌 상태다. 무엇보다 노조가 사측과 번번이 대립각을 세우고 ‘파업 리스크’를 높일 경우 한국 자동차 업계 전반의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외 본사로부터 전기차 등 신차 물량을 배정받는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은 불안정한 노사 관계로 인한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 SW 국산화율 38% 그쳐
현대자동차는 내년 상반기 서울 도심 내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에서 ‘로보라이드’의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다. 차량 스스로 위험 상황에 대처가 가능한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차가 활용된다. 로보라이드에서 한 걸음 나아가 물류 이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로보딜리버리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게 현대차의 청사진이다.
당장 몇 달 뒤면 우리나라에서도 도심을 달리는 자율주행차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정작 기술력 측면에서의 성적표는 암울한 실정이다. 시장조사 업체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가 발표한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순위 20위권 내에는 웨이모·포드·GM크루즈 등 미국과 중국 기업의 이름이 대거 올라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자율주행 업체 앱티브와 합작해 설립한 ‘모셔널’을 제외하면 우리 기업은 전무하다. 소프트웨어 부문의 상황은 한층 심각하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의 국산화율은 38%로 내연기관 차량 부품(99%)은 물론 자율주행 하드웨어의 85%보다 현저히 낮다.
전문 인력 확보도 문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국내 미래차 인력은 친환경차 4만 2,000명, 차량용 소프트웨어 1,000명 수준이다. 반면 미국(2019년)은 친환경차 인력이 25만 명, 소프트웨어는 2만 3,000명에 달한다. 생산 규모 격차를 고려해도 국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8년까지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분야의 필요 인력이 각각 7만 1,935명, 1만 1,603명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래차 인력은 근본적으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인력으로 미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육성에 나섰다”며 “우리나라는 인력 양성에 뒤처지면서 소프트웨어 등 관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경영 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올 3분기 중견 부품 업체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2.3%나 줄었다. 같은 기간 중소 부품 업체의 영업이익은 무려 98.8% 급감했다.
부품 업체들의 실적이 줄어들고 있는 배경에는 코로나19 여파와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것이 지목된다. 또 전 세계를 휩쓴 차량용 반도체 부족 대란으로 극심한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서 부품 업체들의 납품 물량이 급감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내연기관차가 퇴출되고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 생산이 확대되고 있는 것 또한 부품 업체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