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우리나라 제조업 재고가 지난 2012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공급 부족에도 재고가 쌓이고 이를 반영한 경기 선행 지수가 하락하는 이례적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한국은행은 재고 증가가 감염병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나 물류 지연 등인 만큼 경기 둔화 신호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될 경우 수요 둔화→재고 확대→생산 감소→경기 하락이라는 악순환에 빠져들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제조업 재고 증가율은 8.2%로 2012년 4분기(9.5%) 이후 8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제조업 경기 판단에 주요 활용되는 출하 대비 재고 비율도 지난해 10월 121.3%를 기록했다. 특히 자동차 부품, 반도체, 금속, 석유제품, 화공품 등 국내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재고가 늘어났다. 재고가 늘며 국내 선행 종합 지수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행 지수도 상당 폭 하락했다.
한은은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에도 재고가 늘어난 것은 중간재 생산 비중이 큰 우리나라 산업구조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차질이 국내외 완성차와 정보기술(IT) 기기 생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중간재 재고도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전 세계적인 비메모리 반도체 부족은 국내 생산 반도체 재고 증가로도 이어졌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 꼽힌다. 철강 제품은 철광석·유연탄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한 가운데 중국의 탄소 중립 정책에 따른 생산량 축소 등으로 단가가 빠르게 오르면서 하반기 들어 출하가 감소했다. 화학제품 역시 국제 유가 상승으로 단가가 오르면서 재고가 증가하는 양상이다. 여기에 국내외 감염병 확산으로 경제 주체의 이동량이 감소하면서 휘발유 등 석유 제품 판매도 둔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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