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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에 맡긴 제2 동해가스전 개발…시추는 6년 동안 달랑 한 곳 [관점]

◆국내 대륙붕 개발 이대로 좋은가

자원 개발 적폐 논란으로 10년간 허송…골든타임 놓쳐

日 적극적 동해 공략, 남한 면적 60% 규모 탐사 진행

동북아 해양 관할권 경쟁 ·탄소 저장 대비 ‘다목적 포석’

‘산유국 지위’ 회복하려면 장기계획 수립·꾸준한 투자를





지난 2004년 한국을 세계 95번째 산유국 반열에 올린 동해 가스전의 불꽃이 지난해 12월 꺼졌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7년간 유지해온 산유국 지위를 상실했다. 동해 가스전은 그동안 천연가스와 초경질유 4500만 배럴을 생산해 총 24억 달러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뒀다. 소규모 광구임에도 산유국의 꿈을 이룬 쾌거였고 우리 바다에도 경제성 있는 석유·가스의 부존이 확인됐다는 의미 또한 컸다. 산유국들이 석유·가스전 고갈에 대비해 5~10년 전부터 대체 광구를 개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우리의 제2·제3 유·가스전 개발은 감감무소식이다.

국제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내 대륙붕 개발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국제 유가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면서 배럴당 100달러를 바짝 위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일본 최대 석유 개발 회사인 인펙스가 동해 가스전 인근 해상에서 오는 3월부터 시추 작업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해 우리 정부가 한때 긴장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시추 지점이 우리나라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아닌지 우려했지만 일단 일본 측 EEZ로 확인됐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빨대 효과’다. 시추공을 뚫는 과정에서 지질구조에 압력이 가해지면 원유가 원래 묻혀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본 측 시추 지점은 우리 측 EEZ 경계선에서 15㎞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일대는 석유가 묻혀 있을 법한 ‘유망 구조’가 다수 발견돼 시추가 집중된 곳이다. 동해 가스전(6-1광구 고래 5구조)과는 90㎞, 지난해 한국석유공사에서 시추한 6-1광구 중동부(방어 구조)와는 50㎞가량 떨어져 있다. 한국과 중국의 EEZ가 중첩되는 서해분지 3개 광구에서 2000년대 초부터 탐사 활동조차 중단된 것도 빨대 효과를 내세운 중국 측의 반발에서 비롯됐다. 남해(동중국해) 역시 한중일 3개국의 해상 관할권이 서로 얽혀 있다.

지난 2004년 11월 울산에서 열린 동해-1 가스전 준공식에서 이해찬(오른쪽 세 번째) 총리와 이희범(〃네 번째) 산업자원부 장관이 산유국 출발 선포 버튼을 누른 뒤 박수 치고 있다 /연합뉴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일본의 공격적인 동해 공략이다. 임건묵 석유공사 탐사생산본부장은 “일본의 동해 시추는 우리의 가스전 발견에 자극을 받았다”며 “일본은 홋카이도 일대와 연근해 중심으로 탐사 활동을 하다 점차 우리나라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앞서 2016년에도 이번 시추 지점에서 남동쪽으로 10㎞ 떨어진 곳에 시추공을 뚫은 적이 있다. 임종세 한국해양대 에너지자원공학부 교수는 “시추 성공률이 10% 남짓해 일본이 경제성 있는 유전을 발견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면서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 ‘우리는 뭐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최근 동향은 시사적이다. 일본은 2008년 3D 탐사선 ‘시겐(資源)’ 투입을 계기로 최근 10년 동안 해마다 3000~5000㎢씩 총 6만㎢ 이상의 3D 물리 탐사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서울 면적의 100배, 남한 면적의 60%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로 우리나라가 대륙붕 개발에 나선 1970년 이후 전체 3D 탐사량 7519㎢의 8배 수준이다. 앞서 2005년 일본 정부는 ‘신(新)국가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석유·가스의 자주 개발률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정하고 현재까지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2005년 15%에서 이미 30%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대륙붕 개발은 박근혜 정부 이후 10년째 자원 개발 적폐 시비와 ‘돈 먹는 하마’ 논란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되는 실정이다. 최근 10년 동안 3D 탐사량은 동해 3개 광구 6곳 4,103㎢로 같은 시기 일본 탐사량의 7%가량에 불과하다. 시추 실적을 보면 박근혜 정부 때 2개(2014·2015년),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달랑 1개 뚫은 것이 전부다. 동해 가스전이 6-1광구에서 12번째 시추공을 파고서야 성공한 전례에 비춰보면 대륙붕 개발은 ‘천운(天運)’에 맡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6년 만에 시추한 방어 구조에서는 이상 고압층이 발견돼 작업이 잠정 중단됐다. 올해 예산에 시추 비용이 반영되지 않아 언제 재시추가 이뤄질지도 알 수 없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대륙붕 개발은 10년 장기 프로젝트여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정권 교체와 국제 유가 변동에 상관없이 연금 붓듯 꾸준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임기 때 돈만 쏟아붓고 설령 성공한다 해도 차기 정부의 성과가 된다는 잘못된 인식부터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 시절이던 지난 1993년 9월 청와대에서 대륙붕 6-1광구(고래1 구조)에서 채취한 가스 샘플을 살펴보고 있다. 경제성까지 확인된 동해 가스전은 이보다 북쪽으로 10㎞ 떨어진 고래5 구조에서 1998년 발견됐다. /연합뉴스


물론 장기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2가스전 개발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정부는 10년 단위의 제1차 해저광물자원개발기본계획(2009~2018년)을 수립하고 2018년까지 1조여 원을 들여 20곳을 시추하는 등 대대적인 대륙붕 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MB표 계획은 2년도 안 돼 ‘장밋빛’으로 전락했다. 정부가 당장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해외 광구 인수에 재원과 역량을 올인해 대륙붕 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묻지 마’ 해외 자원 개발의 후유증은 컸다. 정부는 돈줄부터 조였다. 정부의 대륙붕 개발 지원은 2017년부터 사업비 전액(석유공사 기준, 민간은 80%)에서 30%로 뚝 잘렸다. 융자금에 대한 감면 비율 역시 전액에서 70%로 줄였다. 이에 따라 정부의 대륙붕 개발 지원금은 이명박 정부 시절 1076억 원(2008~2012년)에서 박근혜 정부 때 499억 원(2013~2017년)으로 뚝 떨어졌다. 해외 자원 개발뿐 아니라 국내 대륙붕 개발까지 도매금으로 ‘적폐’ 취급을 받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허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배정된 지원액은 460억 원이다. 저유가 시절인 2018~2020년까지는 단 한 푼도 없었다. 현재 진행 중인 8광구와 6-1광구 개발 프로젝트는 각각 2019년과 2020년에야 비로소 조광권 계약이 체결됐다. 산유국 지위를 유지할 골든타임을 이미 놓친 뒤였다. 두 광구는 동해가스전 15배의 가스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뚫어봐야 부존 여부(1차 탐사 시추)와 부존량, 경제성(2차 평가 시추) 등을 각각 확인할 수 있다. 시추 비용은 1000억~5000억 원이 소요된다. 지금 당장 ‘유망 구조’를 찾았더라도 시추와 개발(생산 시설 설치)까지 7~8년가량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2030년까지 산유국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 2015년 4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회 해외자원비리 국정조사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어정쩡한 대륙붕 개발보다 해외 개발이 자원 안보 측면에서 차라리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륙붕 개발은 자원 안보 외에도 경계가 모호한 해양의 경제적 주권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한다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임종세 해양대 교수는 “우리 바다 밑에 부존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기초 자료도 없이 서해와 남해 대륙붕 경계 획정에 대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대륙붕 개발은 해외 개발과 달리 해상 플랜트 등 연관 산업 효과가 기대되고 석유·가스를 100% 국내로 반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폐가스전은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공간으로 활용할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석유 탐사는 CCS 공간 확보와 기본 원리가 동일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권순일 동아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국내와 해외 개발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더 늦기 전에 대륙붕 개발부터 자금 지원 체계를 원상 복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권구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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